[국민논단] 헬조선과 벨조선

입력 2025-08-25 00:32

외국 청년에게 한국은 벨조선
보고 싶고, 살고 싶어 찾는 곳

우리 청년에게 한국은 헬조선
꿈·희망 없는 ‘n포 세대’일 뿐

기업이 투자할 환경 조성해
양질의 일자리 만들지 못하면
청년들 꿈 이룰 기회조차 없어

언제부턴가 ‘헬(hell) 조선’이란 말이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한국이 지옥처럼 희망이 없는 나라라는 의미일 게다. 원하는 직업을 갖기 어렵고, 취업해도 기간제나 계약직이 대부분이어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나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내 집을 갖기 어려운 나라. 청년들의 처지가 3포(연애, 결혼, 출산) 세대에서 5포(3포+내집 마련, 인간관계)로, 다시 7포(5포+꿈, 희망)로 나날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나라. 그들이 모든 것을 포기하는 ‘n포 세대’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이것이 ‘헬조선’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청년들이 ‘헬조선’으로 인식하는 우리나라를 외국인들은 정반대로 아름답고 꿈을 이룰 수 있는 나라로 생각해 몰려들고 있다. 동남아를 비롯한 개발도상국 근로자들은 힘들더라도 한국에서 몇 년 열심히 일하면 고국에서 평생을 편하게 먹고살 만큼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에서 우리나라를 찾는다. 한때 선진국이던 서구의 젊은이들은 한류 열풍 속에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여행하거나 한국을 경험하기 위해 몰려든다. 그들이 보는 대한민국은 모든 것이 경이롭다. 새벽까지 돌아다녀도 안전한 나라, ‘K드라마’에서 본 장소와 분위기가 그대로 살아 있는 나라. 그래서 보고 싶고 오고 싶고 살고 싶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를 매우 아름답고 살기 좋은 나라라는 의미에서 ‘벨(belle) 조선’이라 불러도 좋을 듯하다.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사회와 환경을 경험하면서 이처럼 극단적으로 서로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든 것일까. 외국인들이 한국의 어두운 면을 몰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우리 청년들이 우리의 장점을 망각하고 노력하지 않고도 잘살고 싶어서 그런 것일까. 양쪽 다 일리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과 지식의 범위 내에서, 즉 상대적 관점에서 사물을 판단하고 이해한다는 점이다. 우리 청년들 중에도 일찍부터 세계 여러 나라를 경험해 본 사람들은 그리 쉽게 ‘헬조선’을 외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우리나라에 오래 살고 있는 외국인들은 겉모습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많은 모순과 부조리, 불공평과 불의가 존재하는 것을 이해할 것이다.

현실이 어느 쪽이든 ‘헬조선’은 무엇보다 양질의 일자리 부족에서 시작된다. 청년들이 기대하는 좋은 일자리가 부족하니 연애나 결혼은 꿈도 꾸기 어렵고, 부모 잘 만나 돈 걱정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과 함께 불공정과 불평등에 저도 모르게 화가 난다. 이런 시기에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무엇보다 기업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 수 있는 투자 환경을 형성해야 한다. 청년들이 취업만이 아니라 창업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고, 그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노력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키워줘야 한다.

안 그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강력한 관세 압박 때문에 미래가 불투명한데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노란봉투법과 상법 2차 개정안으로 기업의 손발을 옥죄고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리려 한다. 국내 기업은 물론 우리나라에 투자한 외국 기업을 포함해 주한 유럽연합(EU)과 미국 상공회의소 관계자들까지도 이구동성으로 부정적 효과를 경고하고 나섰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숫자만 믿고 강행하고 있다. 게다가 법인세도 1% 포인트 인상해 세계 최고 수준인 25%로 올리려 한다. 과거 윤석열정부가 내린 것을 정상화하는 것이라고 억지를 쓰지만 국민과 기업은 세금을 더 내야 하니 모두 증세로 인식한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두 법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기자의 질문에 “해보고 문제가 생기면 그때 다시 바꾸면 된다”는 무책임한 답변을 한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기업이 해외로 빠져나간 뒤 법을 고치면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게 정책의 최고책임자가 할 소린가.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에 투자하면 관세는 없다며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가뜩이나 경쟁 환경이 매우 불리한 상황에서 우리 기업은 이 나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으니 좋은 일자리가 더욱 빨리 사라질 것이 분명하다. ‘헬조선’ 다음엔 무엇이 올까. 청년들에게 ‘벨조선’을 물려줄 방법은 없을까. 희망을 잃어 근심이 가득한 청년들을 보면서 기성세대의 한 사람인 필자는 참으로 민망하고 미안할 뿐이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