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중순 열흘간 인도에 다녀왔다. 인도는 인구 14억의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이며, 최근 경제성장률도 6~7%에 이른다. 대국이고 발전잠재력도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사회와 문화는 우리에게 다소 이질적이며, 복잡성과 모순도 두드러진다. 카스트제도가 점차 약해지고 있지만 빈부격차는 여전히 크다. 관료 부패, 경제 개방도, 교통 및 전력 인프라 등의 측면에서도 점차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다.
외교적으로도 냉전기 비동맹 전통이 주요국 모두와 제휴한다는 정책으로 변형돼 남아 있다. 인도는 중국을 최대 위협으로 여기며 미국과 가까워졌지만, 러시아와의 오랜 우호 관계도 중요시한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50% 관세 부과 이후 인도의 행보도 국제적 관심사다. 미국은 인도에 농산물 시장 개방과 러시아산 에너지 구매 중단을 요구하지만 인도는 들어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중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는 모양새다.
인도 방문 기간 중 국정기획위원회가 국정과제를 발표했다. 외교·안보 분야 과제에는 신남방정책과 신북방정책의 계승 발전이 포함됐다. 신남방·신북방 정책은 문재인정부 당시 외교 다변화 정책이었다. 윤석열정부에서는 인도·태평양전략을 발표했으나, 이번에는 인도·태평양이라는 용어가 빠졌다. 그렇다고 너무 정치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실제 내용을 들여다보면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전략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다. 중국을 배제하지 않으려는 포용 원칙이 대동소이하고, 외교 다변화와 연대 확대라는 목표도 유사하다.
또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전략 모두 인도를 중요 협력국으로 강조했다. 하지만 현지에서 인식하기로는 그동안 인도는 우리의 높은 정책적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뜬구름 잡는 지정학 얘기만 하지 말고 구체적 산업 협력을 확대하라”는 어느 교민의 지적이 생각난다. 국가 관계가 발전하려면 경제협력의 토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인도의 복잡성과 열악한 환경, 문화적 이질성 등이 경제 관계 진전에 필요한 관심을 낮췄는지 모르겠다.
이제 다변화와 연대는 우리의 생존과 번영에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안미경중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미·중 경쟁이 안보와 경제, 과학기술 등 국제관계의 모든 영역에서 심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종종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의 압박에 직면한다. 게다가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반복되고 더 심해질지 모른다. 한·미동맹은 여전히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이고, 중국과의 관계도 가능한 한 호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스스로 힘을 키우고, 동시에 다양한 국가와 연대하고 협력을 확대해야 더욱 험난해진 지정학과 지경학의 바다를 헤쳐 나갈 수 있다.
문제는 연대와 다변화가 말처럼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우리와 문화와 가치가 비슷하고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지는, 우리 입맛에 딱 맞는 그런 나라는 많지 않다. 경제관계에 국한해도 그렇다. 중국이 수십 년간 우리의 최대 시장이자 투자 대상국이었던 데에는 그럴만한 입지 조건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중국의 경제성장과 미·중 경쟁의 여파로 조건이 크게 바뀌었다. 중국을 대체하는 지역으로 동남아시아, 특히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등이 떠올라 상당한 투자가 집중됐다. 하지만 중국을 벗어나 일부 동남아 국가에 다시 집중되는 모양새여서 앞으로 더 많은 다변화 노력이 필요하다. 인도처럼 잠재력이 큰 나라와의 협력이 확대돼야 하지만 그러려면 우리의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인내심을 갖고 상생협력을 도모해야 한다. 지금 인도는 우리와의 조선업 협력을 기대한다고 한다. 우리는 과연 인도와 미래를 함께할 준비가 돼 있을까.
마상윤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