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역대 최대 규모인 35조3000억원으로 편성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역사적으로 과학기술을 존중해 발전시킨 나라는 흥했고, 과학기술을 천시한 나라는 대개 망했다”며 “(R&D 예산이) 대한민국 새로운 발전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22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제1회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전원회의를 주재하고 ‘2026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안’ 등을 심의·의결했다. 이 회의는 대통령을 의장으로 한 과학기술 분야 최상위 의사결정기구다.
내년도 R&D 예산은 역대 최대인 35조3000억원 규모로 편성됐다. 올해 예산보다 약 5조7000억원(19.3%) 늘어난 것이다. 윤석열정부는 과학기술계 카르텔 병폐를 비판하며 2023년 29조3000억원이던 예산을 지난해 26조5000억원으로 삭감했는데, 이번 예산안 상승분은 원상복구 수준을 넘어선 파격적 규모라는 평가다.
정부는 예산을 기술주도 성장과 연구생태계 회복을 위해 사용할 계획이다. 기술주도 성장 측면에선 인공지능(AI)에 방점이 찍혔다. 정부는 범용인공지능(AGI), 경량·저전력 AI 등 차세대 기술을 개발하는 데 올해보다 106.1% 늘어난 2조3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AI반도체, 자율주행기술, 휴머노이드 로봇 등 초격차 전략기술 확보를 위해선 가장 많은 8조500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정부는 또 연구생태계 회복을 위해 기초연구 부문에 올해보다 14.6% 늘어난 3조4000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특히 연구 현장의 족쇄로 평가받던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단계적 폐지하기로 했다.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은 “(PBS 하에서) 연구 인건비를 따내려면 소규모 과제를 대량 확보해야 해 제안서 작업이 많아졌고,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하기 어려웠다”고 폐지 이유를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참석자들과 직접 연구생태계 개선 방안을 토론하기도 했다. 김현정 서강대 교수가 이 대통령에게 “기초과학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는데, 황금알은 생각도 못 하고 알 낳기도 힘들다”고 하자 이 대통령은 웃으며 “거위를 아예 안 키우죠”라고 맞장구를 쳤다.
이 대통령은 “연구자 인센티브 방식을 다양하게 획기적으로 해야 한다”며 참석자들에 추후 회의에서 아이디어를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또 “기술 거래시장이 너무 없어 생기는 문제도 있다. 특허청을 지식재산처로 승격해 특허나 기술 거래시장 활성화 사업도 해보려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