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간판도 엘리베이터도 없는 서울 동작구의 한 건물 4층 내부는 기계음이 낮게 깔려 있었고 잉크 냄새가 번져 나왔다. 한쪽에서는 타투 시술이 이뤄지고, 다른 방에서는 실습생들이 사람 피부와 유사한 실리콘 패드에 선을 긋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학원으로는 운영할 수 있지만 시술은 할 수 없는 ‘타투숍’의 풍경이다. 타투숍은 대개 간판 없이 운영하고 정확한 위치도 공개되지 않는다. 예약금을 보낸 뒤 시술 당일에야 메신저를 통해 주소가 전달된다.
K팝·K뷰티 열풍을 타고 서울 홍대·신촌의 타투숍은 외국인 관광객들도 흔히 찾는 필수 코스가 됐다. 그러나 타투이스트에게 받는 문신 시술은 불법이다. 국내에서 1300만여명이 문신을 경험했지만 합법 시술은 1.4%에 그쳤다. 30년 넘게 제도권 밖에서 ‘음지의 산업’으로 자리해 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문신사법’이 국회 소위를 통과하며 합법화 논의의 첫 관문을 넘었다. 21일 업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 제2소위는 지난 20일 비의료인에게 문신 시술 자격을 부여하는 ‘문신사법’(통합안)을 의결했다. 1992년 대법원이 문신을 의료행위로 본 뒤 비의료인 문신 시술은 줄곧 불법이었다. 그러나 새 법안은 “문신사는 의료법 제27조(무면허 의료행위 금지)에도 불구하고 문신 행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해 예외를 뒀다. 복지위 전체회의와 본회의 등을 거쳐야 한다.
법안의 핵심은 면허와 업무 범위의 명문화에 있다. 문신을 하려면 국가시험에 합격해 정부 면허를 받아야 한다. 마취 목적의 일반의약품 사용 허용, 위생교육 의무화 등 안전장치도 법에 담았다. 보호자 동의 없는 미성년자 시술, 등록된 문신업소 외 시술은 금지된다.
이제껏 타투 산업은 법적 테두리 밖에서 몸집을 키워 왔다. 복지부가 추산한 타투이스트는 2021년 기준 35만명에 달한다. 계명문화대는 2023년 국내 최초로 ‘타투디자인’ 전공을 신설했다. 해외서는 K팝 아이돌의 타투가 글로벌 팬덤의 콘텐츠로 소비되기도 한다.
반면 현장에서는 모순적인 법 적용에 혼선이 심화하고 있다. ‘문신업’으로 사업자등록과 세금 납부는 가능하지만, 영업신고는 불가하다. 타투이스트 박모(29)씨는 “불법을 빌미로 가격을 깎자는 협박이 수시로 이뤄지고 경찰 조사로 번지는 경우도 잦다. 숨어서 일하기 싫어 해외로 나가는 이들도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해외는 ‘면허·위생 중심’ 관리로 전환한 상태다. 미국 다수 주가 면허제와 위생·안전 교육을 의무화했고, 유럽연합(EU)은 색소 안전 규제를 시행 중이다. 일본도 2020년 최고재판소 판결로 비의료인 시술을 합법화했다. 우리나라는 타투 시술을 불법으로 규정한 유일한 나라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규제 공백 속 미흡한 시술은 소비자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만큼 면허·위생 기준을 갖추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