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에 협조 요청한 금융위… 석화업계엔 “볼멘소리 말라” 쓴소리

입력 2025-08-22 00:16

정부가 석유화학 산업의 사업 재편을 지원하겠다고 나선 가운데 금융 당국이 5대 은행장을 불러 모아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고 당부했다. 정부 방침에 일부 불만을 나타낸 석화 업계를 향해선 “볼멘소리가 들린다”며 쓴소리를 했다.

금융위원회는 21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5대 은행장 등을 소집해 석화 산업 재편을 위한 간담회를 열고 석화 기업에 내준 대출을 당분간 회수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전날 정부가 내놓은 석화 산업 사업 재편 방안을 금융권 차원에서 지원하기 위한 행보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석화 산업은 우리 경쟁력의 근간을 이뤄 포기할 수 없지만 더는 수술을 미룰 수 없는 처지”라면서 “‘스웨덴 말뫼의 눈물’을 잊지 말고 (금융권을 포함한) 모두가 참여하는 사업 재편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 부위원장은 석화 업계를 향해선 예정에 없던 작심 발언을 했다. 그는 “어제 정부의 사업 재편 방안이 발표됐다. 포괄적인 감축 방안을 냈고 1년간 지지부진했던 것을 매듭 지었다”면서 “그런데 석화업계에서 볼멘소리가 들리더라.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려고 하니 보따리부터 내놓으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석화업계의 선 자구 노력과 채권단의 협조가 유기적으로 진행돼야만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다”면서 “금융권은 조력자이자 심판자 역할을 충실히 해달라”고 강조했다.

최근 은행권은 석화 기업에 대한 대출 만기를 줄였다. 지난 16일 기준 5대 은행이 롯데케미칼·여천NCC·한화토탈에너지스·효성화학·SK어드밴스드·SK이노베이션 6대 석화 기업에 내준 대출 중 만기가 3개월 이하로 짧은 초단기 대출 규모는 1조8367억원으로 지난해 1월 말 대비 90% 이상 급증했다. 만기 1년 이내인 단기 대출 규모도 4조5996억원으로 지난해 1월 말의 두 배 수준에 이른다.

금융 당국은 석화 산업의 사업 재편 계획이 확정될 때까지 금융권의 대출 회수를 최대한 미뤄줄 방침이다. 정부가 지원에 앞서 석화업계의 생산량 감축이나 사업부 매각, 대주주의 자금 지원 등 자구 노력을 보겠다고 한 만큼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기업에 금리 우대 등 별도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은행권 관계자는 “석화업계가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해 사업 재편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구조 조정 이후 슈퍼 사이클을 맞이한 조선업과는 다를 것”이라며 “금융 당국 요청에 따라 우산을 당장 빼앗지는 않더라도 큰돈을 오래 내주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