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내 돈을 걸면 보이는 것

입력 2025-08-23 00:38

새벽에 눈이 떠질 때가 있다. 예전 같았으면 물 한 모금 마시고 도로 눈을 감았을 테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다. 손을 뻗어 침대 한쪽에 놓인 스마트폰을 더듬어 찾는다. 그리고 증권사의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MTS)을 켠다. 미국 증시가 어떤 상황인지 궁금해서다.

아침에는 간밤의 뉴욕 증시를 확인하고, 코스피지수의 흐름을 전망하는 기사를 읽는다. 현재 자본시장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라는 이유도 있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매달 조금씩 모은 작고 소중한 돈이 증시에 투자돼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내 돈의 안녕이 궁금해진다.

나는 주요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통해 국내 증시에 투자하고 있다. ETF 종목명 옆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숫자가 보이면 투자 수익이 나고 있다는 뜻이다. 기분이 좋아진다.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주식 구루들의 조언이 떠오르지만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상승의 이유를 심각하게 찾을 필요도 없다. 고심 끝에 오를 것 같다고 판단한 자산에 투자했고, 실제로 올랐으니 예상대로 흘러가고 있다. 가파르게 오르지 않는 한 매매를 고민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대체로 평가는 손실로 이어지기 마련이고, 견디다 못해 손절을 하기도 한다. 왜 내가 투자하면 하락하는 걸까. 부지런히 이유를 찾아보게 된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통화정책 같은 거시 뉴스부터 포트폴리오에 담긴 개별 회사의 재무제표, 사업 현황, 경영진과 이사회, 외국인 수급까지. 마지막 종착지는 종목 게시판이다. 결국 살펴볼 수 있는 것은 다 보게 된다. 1400만 개인투자자가 모두 그렇게 한다. 자신과 가족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다.

지난 1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코스피 주가순자산비율(PBR)을 “10 정도”라고 답한 것을 놓고 시장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코스피 5000’을 목표로 하는 현 정부 경제수장의 자본시장 인식이 예상보다 낮았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으로 어렵게 쌓은 정부의 정책 신뢰감이 한순간에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만약 구 부총리가 자신의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면 저(低) PBR 기업의 주주가치 제고를 유도하는 전 정권의 밸류업 프로그램에도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한때 PBR 1배에도 미치지 못했던 코스피에 대해서도 탄식했을 것이다. 자신의 돈이 들어갔다면 무관심해질 수 없다.

지난해 코스피는 1년 동안 9.73% 하락하면서 같은 기간 미국 나스닥(28.64%), 일본 닛케이225평균주가(19.22%) 등 주요국에 비교해 크게 뒤졌다. 구 부총리는 21일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주가수익비율(PER)로 착각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성난 투자자의 민심을 되돌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잃어버린 신뢰를 쌓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시장과 이해관계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국회의원과 중앙부처 고위공무원에게 국내 대표 주가지수인 ‘코스피200 ETF’를 의무적으로 보유하도록 하는 것은 어떨까.

코스피200은 우리 증시를 대표하는 200개 종목을 모아놓은 주가지수다. 코스피200은 곧 한국경제의 현 상황을 숫자로 나타낸 실시간 현황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현실성도 있다. 개별 종목이 아니므로 공직자 직무와 관련한 정보 이용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은 없다.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들 사이에서는 보유 내역이 공개되는 게 부담이라는 이유로 주식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코스피200 ETF라면 다르다. 이들이 월급으로 코스피200을 사들이면 사들일수록 시장은 물론 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있다. 한국경제에 자신감이 있다는 신호로도 전달될 수 있다. 부동산을 매매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것이다.

지난달 31일 정부의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코스피는 상승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증시 부양책과 충돌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만약 정책 결정자가 코스피200 ETF를 보유하고 있다면 아마 조금 더 정교하고 현실감 있는 정책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광수 경제부 기자 g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