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여야 ‘내부 총질’ 더 많아져야

입력 2025-08-22 00:39

국힘이 지금 '폐족' 신세된 건
尹과 당의 잘못에 침묵한 탓

내부 비판과 논쟁, 견제, 감시
활발해야 정치가 더 건강해져

대통령·민주당도 그렇게 해야
국정과 입법 실책 줄일 수 있어

국민의힘이 스스로의 표현대로 ‘폐족’ 신세가 된 것은 이번 전당대회 히트어인 ‘내부 총질’이 그간 없어도 너무 없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윤석열정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사이에는 물론, 당내에서도 잘못된 것을 비판하거나 제동을 거는 일이 거의 없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 취임 뒤 이준석 당시 대표가 그런 역할을 하려다 아예 쫓겨났고, 이후 친윤계 지도부가 잇따라 들어서면서 윤 전 대통령이 뭘 하든 다들 쥐 죽은 듯이 있었다. 2023년에 그나마 쓴소리를 간혹 하던 안철수·나경원 의원이 당권에 도전하려 했지만 좌절됐고 대신 김기현 대표 체제가 출범하면서 ‘용산 출장소’ 색채가 더 짙어졌다. 한동훈 전 대표가 ‘내부 총질’ 명사수였지만 그가 지난해 7월 당을 떠맡았을 땐 대통령실과 당을 고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내부 총질’은 어감이 고약하고 갈등을 야기하는 것이기에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지만 제대로만 하면 순기능도 적지 않다. 순화하면 노선 투쟁, 정책 갈등, 명분 싸움, 정체성 투쟁, 계파 대립 등일 텐데 국내외 정치권에서 여러 긍정적 사례가 있다. 대표적인 게 1990년대 영국 노동당의 노선 투쟁이다. 당시 노조를 받들고 사회주의 정책을 강화하자는 좌파 노선에 반대해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시장친화적이며 중도적인 노선으로 돌아서야 한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치열한 논쟁 끝에 블레어의 신노동당 노선이 채택됐고 이런 내전을 거친 덕분에 노동당은 1997년 총선 승리 뒤 10년 이상 장기 집권할 수 있었다.

일본 자민당의 장기 집권 비결도 역설적이게도 당내 파벌 간 치열한 권력 투쟁에 있다는 분석도 있다. 총재 자리를 둘러싼 파벌 갈등, 경쟁, 합종연횡이 이뤄지면서 당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될 수 있고, 상호 견제를 통한 ‘내부 민주주의’ 기능이 작동하면서 당의 건강성을 키웠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과거 진보 정당들에서 노동·통일운동 중심의 당 운영을 주창하는 세력과 국회에 들어왔으면 제도권 정치도 신경써야 한다는 의회파가 떠들썩하게 싸웠지만 이런 논쟁을 거치며 빨간 머리띠와 투쟁에만 익숙해 있던 다수 구성원들이 현실 정치에 눈을 뜨고 일반 국민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국민의힘이 지금 ‘윤 어게인’ 세력과의 결별 문제로 ‘내부 총질’ 시비에 휩싸였지만 꼭 상처만 남는 싸움은 아닐 것이다. 침묵과 무력감에 익숙해 있던 당이 적어도 잘못된 것을 크게 말하기 시작했고, 서로 비판과 반박을 하면서 뭐가 옳은 길인지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한없이 무기력했던 당이 잠에서 깨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긍정적일 수 있다. 다만 이제 국민 다수의 마음을 얻는 전대 결과를 도출해야 더 의미 있고 미래지향적인 싸움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국민의힘보다 그런 내부 논쟁이 더 절실한 곳이 여권이다. 대통령실과 더불어민주당 사이, 또 당에서도 국정 방향과 정책 노선, 인사 문제, 개혁의 속도, 지도부 행보 등을 놓고 견제와 보완의 원리가 작동해야 더 온전한 집권 세력이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주초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여당 지도부가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검찰개혁법안(검찰청폐지법·공소청설치법·중대범죄수사청설치법·국가수사위원회법안)에 대해 ‘졸속 추진은 안 된다’ ‘공론화 과정을 거치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한 것은 잘한 일이다. 일각에서 ‘검사 2000명을 놀게 할 수 있는 법안’ ‘수사 차질로 서민이 피해 볼 수 있는 법안’이라는 우려가 있었는데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그런 일이 없도록 법을 더 꼼꼼히 만들라고 요구한 것이다.

당정 간 이런 건설적인 비판과 견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대통령과 여당이 ‘한몸’이기만 해선 안 되고 국정과 입법 활동에 대해 서로 할 말을 하고 때론 설득하고 긴장도 유지해야 국익과 국민에 가장 좋은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특히 지금 너무 흥분한 것처럼 보이는 민주당 지도부와 아직은 초보운전 상태인 대통령실에 그런 견제와 비판은 더욱 긴요하다. 민주당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당이 강성층만 바라보지 않고 국민 눈높이에서 정치를 하라고 누군가 꾸준히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지금 민주당에선 과거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 역할을 하는 이가 안 보인다. 그렇게 아무도 호루라기를 불지 않고 앞만 보고 질주하게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실수하기 마련이다.

손병호 논설위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