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월해지고 싶은 욕망을 좇는다면 그 끝은 파멸

입력 2025-08-22 03:05
‘야망의 대가’ 저자는 야망으로 자신을 갉아먹는 사탄에게서 우월성 추구의 폐해를 본다. 그림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의 ‘그리스도의 유혹’. 중앙 상단에 성전 꼭대기에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 예수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시냇가에 핀 작은 백합은 자기 삶에 아주 만족했다. 그의 평안은 어느 날 찾아온 작은 새 때문에 깨진다. 새는 여기저기서 본 화려한 백합, 특히 ‘크라운 임페리얼 백합’과 작은 백합을 비교하며 그의 자존심을 깎아내린다. 열등감에 시달리던 작은 백합은 결국 새에게 뿌리 쪽 흙을 쪼아 화려한 백합이 있는 곳으로 자신을 옮겨달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가던 도중 시들어 죽고 만다.

덴마크 실존주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의 저작 ‘다양한 영혼이 말하는 교훈적 담론’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미국 예일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교수이자 예일신앙과문화연구소 소장인 저자는 이를 “우월성을 추구하며 열등감으로부터 도망치려다 자신을 파멸시킨 사례”로 본다. 염려에 시달리다 끝내 자기 파멸에 이른 백합에게서 끊임없는 생존 경쟁에 매달리는 현대인의 모습을 발견한 저자는 키르케고르뿐 아니라 영국 시인 존 밀턴, 사도 바울의 글을 살피며 기독교 전통이 우월성 추구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살핀다.


키르케고르는 우월성 추구를 “가장 강력하게 부패를 초래하는 오염원 중 하나”로 여겼다. “지적 역량과 도덕적 올바름, 부와 아름다움 등 특정 선의 획득 여부로 서열을 매기다 보면 한 사람의 보편적 인간성과 고유한 특수성 모두가 배반당하기 십상”이라서다. 저자가 정리한 키르케고르의 대안은 ‘자기 평가의 대상을 전환하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을 자기 정체성의 일차 기준으로 삼고, ‘하나님 앞에서’(코람 데오) 살아감을 인식하라”는 조언이다.

저자는 밀턴의 ‘실낙원’과 ‘복락원’ 속 사탄에게서도 교훈을 얻는다. 이들 작품에서 사탄은 성자인 예수에 대한 열등감에 시달리며 성부 하나님처럼 가장 위대한 존재가 되길 열망한다. 사탄은 자신의 야망을 정당화하기 위해 동료 천사에게 ‘성자도 우리처럼 피조물’이라고 속인다. 저자 말처럼 “우월성을 추구하다 자신만의 진실을 만들어 낸” 셈이다.

열등감의 고통에 시달리던 사탄은 예수의 권위를 끌어내리기 위해 성전 꼭대기로 데려가 ‘내 도움을 받아 세상의 지도자가 돼라’고 유혹한다. 이를 간파한 예수가 일언지하에 거절하자 사탄은 속절없이 무너진다. “성취와 소유물을 척도로 삼아 누군가보다 더 낫다고 인정받으려는” 원초적 욕구에 예수가 흔들리지 않아서다.

이런 욕구는 초대교회 공동체 내에도 교묘히 파고들었다. 고린도교회 내 가난하거나 권력 없는 성도를 경멸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자 사도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를 부끄럽게 한다”(고전 11:22)며 책망한다. 저자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고전 1:29)는 본문을 인용하며 “사도 바울은 우월성 추구를 부추기는 구조 자체를 무너뜨렸다”고 평한다. 부나 명예 같은 사회적 조건이든, 섬김 등의 선행이든 뭔가를 수단으로 우월성을 추구하는 행위는 하나님 뜻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들 사상가의 의견을 종합해 저자가 끌어낸 결론은 이것이다. “겉으로 번성하는 듯 보여도 주변과 자신, 나아가 사회와 문화, 자연까지 병들게 하는 우월성을 쫓는 대신 진정한 진보를 가져오는 ‘탁월성’을 추구하라”는 것이다. “탁월성의 척도는 다른 사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로 삼을 것”도 제언한다. 저자는 기독교인이 이런 삶을 살아갈 때 “우월성 추구의 결과로 나타난 세상의 위계질서가 전복될 것”으로 내다봤다. “모든 위계질서는 (계층 간) 절대적 차이보단 상대적 차이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근대화 이후 개인과 사회 발전의 연료로 여겨져 권장됐던 욕망이 왜 사회와 자연에 해악을 끼치는 골칫덩이가 됐는지를 신학적으로 논증한 책이다. 철학과 문학, 성경을 오가며 논지를 풀어내는 저자의 주장을 오롯이 따라가기 벅차다면 책 말미에 실린 ‘우월성 추구에 반대하는 24가지 논제’부터 읽는 것도 방법이다. 찬찬히 읽다 보면 미국 출판 전문지 ‘퍼블리셔스 위클리’ 평처럼 세계적 신학자가 풀어내는 “세상의 끊임 없는 전진 강박에 대한 현명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