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조종하려 하지 마라!”
30대 중반에 접어든 김모씨의 지인들이 그녀의 이상행동을 눈치채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돌연 SNS에 위와 같이 내용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올리거나 세계정세에 관한 음모론을 주장하곤 했기 때문이다. 한 번은 심각한 얼굴로 누군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해킹해 음해하려 한다는 고민을 털어놓은 적도 있었다. 물론 근거 없는, 망상에 가까운 의심이었다.
김씨는 모태신앙인이었다. 매년 여름이면 선교여행을 떠났고, 교회에서 봉사도 오래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겪은 인간관계의 어려움과 그로 인한 상처가 누구보다 순수한 신앙을 가졌던 그녀를 조금씩 갉아 먹었다고 지인들은 안타까워했다. 물론 지인들도 그런 그녀를 돕고자 전문 상담사와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등 여러 방면으로 애를 썼다. 하지만 가족이 아닌 이상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결국 그녀는 점점 교회 공동체 주변을 겉도는 존재가 됐다.
지인이었던 그녀의 사연을 계기로 ‘크리스천 마음건강 리포트 마주보다’(국민일보 2025년 8월 6·7일자) 기획기사를 준비하게 됐다. 취재하면서 생각보다 많은 크리스천이 마음건강 문제로 힘들어하고 있음을 알게 됐다. 목회자 자녀였지만 이혼 과정에서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는 중년의 가장부터 교회 안팎의 모습이 다른 부모에 대한 증오로 하나님까지 미워하게 된 한 청년까지. 교회 성도 5명 중 1명 이상이 현재 우울·불안 등 정신건강 문제를 겪고 있다는 지난해 목회데이터연구소의 조사 결과도 마주하게 됐다.
그나마 마음을 두고 의지할 만한 교회 공동체를 만나 회복 중에 있다거나, 전문가의 도움으로 어두운 터널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이들은 형편이 나은 편에 속했다. 김씨처럼 교회 공동체와 점점 멀어지며 고립되는, 통계 바깥에 숨은 이들이 얼마나 될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웠다.
그런 현실에서 “건강한 관계를 경험해보지 못한 요즘 세대는 모든 문제를 오로지 신앙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며 종교 행위에 몰입하거나 이단에 빠져 이단이 시키는 대로 하는 양극단의 모습을 취하기 쉽다”는 한 전문가의 지적은 큰 의미로 다가왔다. 사이비·이단 전문가들 역시 많은 이단이 마음건강이나 심리상담 등을 내세우며 사람들을 미혹한다며 우려해왔다. 실제로 최근 한 방송 매체는 마음건강 상담을 앞세워 청년층에 다가가는 이단들의 행태를 폭로했다. 청년 대상 행사를 열어 자연스레 상담의 자리로 이끈 뒤 이단 교리를 포교한다는 것이다. 영혼 구원에 목적을 둔 교회만큼은 적어도 마음건강 문제를 단순히 사회과학적 측면에 국한하거나 의학적으로 치료할 일로만 치부할 게 아니라는 메시지로 읽혔다.
현장에서 만난 교계 심리상담전문가들은 온전한 마음건강의 회복은 복음을 바탕으로 한 치유와 함께 이뤄질 때라야 가능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자아실현에 초점을 둔 일반상담은 결국 사람들을 교회와 멀어지게 만든다는 지적이었다.
취재하며 발견한, 회복의 길에 접어든 이들의 공통점 역시 복음과 교회 공동체였다. 불신자였지만 기독교인인 전문 상담사를 통해 자연스레 복음을 접하게 됐다는 이는 “다른 종교와 달리 기독교는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얘기하며, 더 큰 존재인 절대자의 사랑에 기대 앞으로 나아가게끔 해주는 것 같았다”고 고백했다. 취재하며 만난 또 다른 이의 고백을 곱씹어 본다.
“제 이야기를 경청해주며 아픔을 사랑으로 품어주고 이해해주는 공동체를 만나며 상처를 꺼낼 수 있게 됐습니다.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를 품는다는 게 얼마나 성숙한 일인지를 깨달았죠. 결국, 지금도 사람을 살리고 치유하는 건 교회라고 믿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회복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기에 이제 저도 다른 누군가를 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