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한국 교회는 예배당은 있었으나 나라 없는 공동체였다. 바벨론 포로기의 유다처럼 주권을 빼앗긴 교회였다. 그 시절 교회의 시간은 늘 피식민자의 시간, 떠도는 자의 시간이었고 예배당은 성소라기보다 피난처에 가까웠다. 공간은 속박됐지만 시간만은 여전히 하나님의 것이었다.
신학자 폴 틸리히는 나치의 유대인 혐오를 진단하며 두 가지 종교를 구분했다. 하나는 ‘공간의 종교’다. 땅과 민족, 권력을 절대화하며 제국을 꿈꾸는 신앙이다. 나치는 독일 민족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고 유대인을 그 적으로 삼았다. 틸리히는 이를 다신교적 공간 종교라 불렀다. 다른 하나는 ‘시간의 종교’다. 광야와 유랑 속에서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예언자의 신앙이다. 그는 유대교를 그 대표로 보았다. 하나님의 선물인 공간도 신앙의 시간과 만나지 못하거나 하나님보다 앞세워질 때 그것은 다신교적 민족주의로 변질된다.
일본 제국주의는 조선을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공간의 질서에 끌어들이려 했다. 신도(神道)는 제국주의의 공간 종교였다. 조선 교회를 포함한 모든 공동체를 천황 아래 굴복시켰다. 대한은 광야를 떠도는 시간의 공동체와 같았다. 가난한 백성들은 요셉처럼 고향을 떠나 사할린과 하와이로 흩어져 땀방울을 쏟아야 했고, 장준하와 윤동주는 다윗처럼 난양과 충칭, 교토와 후쿠오카에서 파란만장한 기도를 새겨야 했다.
그럼에도 8·15 해방은 단순히 잃어버린 공간을 되찾은 날만이 아니었다. 억압된 시간이 해방된 날이기도 했다. 해방은 일본 통치에서 벗어난 정치 사건을 넘어 한국 교회가 광야에서 성소로 나아가는 전환점이었다. 예언자의 시간을 품었던 교회가 제사장적 공간까지 준비하게 된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참회 없는 해방 공간은 곧 둘로 갈라졌다. 이스라엘이 아브월 9일에 두 번의 성전 함락을 겪었듯 우리도 9월 9일 신사참배 결의와 공산정권 수립이라는 우상숭배와 심판의 날을 불과 10년 만에 맞이했다. 이후 남과 북은 같은 민족이지만 전혀 다른 공간을 살아가게 됐다. 위성 사진처럼 어두운 북쪽과 밝은 남쪽.
시간도 마찬가지였다. 남쪽은 세계의 시간과 맞물려 빠르고 복잡하게 흘렀다. 반면 북쪽은 고립된 시간 속에서 멈춘 듯 흐른다. 선전의 시간, 봉건적 충성의 시간, 외부의 시간이 차단된 그곳에서는 미래가 아니라 우상에 절하는 과거만 무한 반복된다. 두 공간, 두 시간은 같은 언어를 쓰지만 너무나 다른 시간을 지나며 서로 다른 공간에 익숙해졌다. 8·15 해방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공간이고, 미완의 시간이다.
그렇다면 해방 이후 80년, 오늘의 한국 교회는 어떠한가. 커다란 예배당, 거대한 공간을 자랑하지만 그 안의 시간도 자부할 만한가. 이제는 사람도 줄고 하나님도 계시지 않는 듯한 쓸쓸한 공간이 돼 가고 있지는 않은가. 틸리히의 경고처럼 회개 없는 교회는 곧 공간의 종교로 굳어지고, 권력과 민족을 하나님 자리에 세운다. 그 자리에는 사랑 대신 혐오가, 환대 대신 배제가, 예언자 대신 제사장만 남는다.
80년 전 우리는 공간을 절반이나마 되찾았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되찾아야 할 것은 잃어버린 예언자의 시간, 가난하고 억울한 자들과 함께하신 금관의 예수의 시간이다. 미움과 배제가 아니라 용서와 화해를 향한 시간, 사랑과 재결합을 향한 시간. 분단된 한반도가 당장 하나의 공간으로 회복되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나의 시간으로는 다시 만날 수 있다. 남북의 그리스도인이 같은 하늘 아래 함께 회개하며 기도하는 시간, 분단의 경계조차 막을 수 없는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기다리리. 심훈의 염원처럼 언젠가 함께 울고 웃는 그날이 오리라. 그날이 오면 “원이 없겠소이다.”
송용원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조직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