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몽실 언니가 된 날

입력 2025-08-22 00:35

SNS를 스치듯 보다가 ‘강해야만 살아남은 90년대생’이라는 릴스를 봤다. 웃음이 불쑥 터졌다. 어린 시절의 굴욕 사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마다 바쁜 엄마를 붙잡고 머리를 묶어 달라고 했다. 양갈래, 반묶음, 포니테일. 주문은 끝도 없었다. 내가 가장 좋아한 건 ‘디스코 머리’였다. 머리카락을 세 갈래로 땋고, 귀 옆에 더듬이처럼 한 가닥씩 빼내는 모양. 머리를 짱짱하게 묶으면 눈꼬리가 여우처럼 올라갔다. 그런 날은 머리뿌리가 욱신욱신 아팠다. 그래도 좋았다.

어느 날 엄마가 나를 불렀다. 마당에 철제 미싱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직감적으로 알았다. 위기다. 피할 수 없다면 협상을 해야 했지만, 이미 늦었다. 엄마는 내 긴 머리카락을 들춰 뒷목이 땀에 젖은 것을 보며 말했다. “히유, 땀 좀 봐라” 하며 순식간에 비닐을 둘렀다. 그리고 가위질. ‘사르륵.’ 한순간이었다. 나는 어깨까지만 자를 줄 알았다. 그러나 바닥에는 이미 세 뼘 길이의 머리카락이 수북했다. 속상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는 앞머리가 삐뚤다 싶으면 눈대중으로 가위질을 다시 했다. 어느새 앞머리는 눈썹 위로 훌쩍 올라가 있었다. 엄마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제발 이 악몽이 빨리 끝나기를 빌었다. 엄마는 거울을 들어 뒤통수를 보여주며 겸연쩍게 말했다. “봐라. 얼마나 시원하냐.” 그날 엄마에게 중요한 건 ‘예쁘냐’가 아니라 ‘시원하냐’였다. 거울 속 나는 영락없이 권정생 선생님의 동화 속 몽실 언니였다.

내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엄마는 큰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듯 말했다. “밟은 줄도 모르고 소똥을 밟으면 머리카락이 금세 자란다더라.”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모르는 척’ 소똥을 밟았다. 엄마는 그 모습을 보고 깔깔 웃었다. 미용실 가는 비용을 아끼려고 손수 머리를 다듬어주던 엄마. 장난기 많던 엄마는 그렇게 나를 키웠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