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성장 둔화에 노동생산성 하락이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고령화 영향으로 받는 월급에 비해 생산성이 떨어지는 ‘고연령 노동자’의 비중이 늘면서 노동의 질이 하락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취지다. 반대로 경영 혁신·기술 개발 등 총소요생산성(TFP) 부문이 성장 둔화에 미친 영향은 예상보다 적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엄상민 경희대 경제학과 조교수와 정승렬 한국은행 통화정책국 정책분석팀 과장, 강석일 한은 경제모형팀 거시모형팀 과장은 20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학자대회(ESWC)에서 이 같은 내용의 ‘인구 고령화와 임금-생산성 격차 그리고 한국의 성장 둔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한국은 이미 201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인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다. 2002~2012년까지만 해도 연평균 4.30%에 이르렀던 한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3~2019년 연평균 3.03%로 1.27% 포인트 하락했다.
기존 분석에선 이를 노동·자본·기술혁신 등 경제 분야 전반에 걸친 생산성 둔화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논문은 기존의 방식으로 계산할 경우 노동(-0.51%p)·자본(-0.51%p)·총요소생산성(-0.25%p) 부문의 성장 기여도가 나란히 하락하면서 한국의 성장 둔화를 이끈 것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하지만 연령대에 따른 임금-생산성 격차를 반영하면 양상은 달라진다. 연구진에 따르면 한국의 30~40대 근로자는 받는 임금보다 16~19%를 초과 생산했다. 반면 50대 근로자들은 급여 수준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생산성이 떨어져 임금의 66~74% 수준에 그쳤다. 한국 특유의 연공서열식 임금 체계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연구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도 많은 국가에서 연차가 높을수록 임금이 오르기는 하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가장 심하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고령화로 인해 50대 근로자가 노동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0~40대에 준하는 수준까지 높아졌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10%대 초반에 머물렀던 50대 근로자의 비중은 2015년을 전후로 20%에 육박하더니 2020년대 들어서는 20%를 넘어섰다. 자연히 전반적인 노동 품질은 빠르게 떨어졌다. 2002~2012년 사이 연 평균 1.29%씩 성장했던 노동 품질 지수는 이후 2019년까지 연 평균 0.65%씩 상승하는 데 그쳤다.
연구진은 이를 바탕으로 노동생산성 하락이 성장 둔화에서 차지하는 지분을 재계산한 결과 기여도가 -0.72% 포인트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혼자서 전체 감소분의 절반 이상을 기록했다는 뜻이다. 반대로 총요소생산성 부문의 기여도는 -0.03% 포인트로 줄어 사실상 성장 둔화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존에 경영계 등에서 총요소생산성 하락을 근거로 경영 혁신, 기술 개발 등을 성장 동력 회복의 최선 과제로 꼽았던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