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미국의 10대 기업 명단은 엔비디아, 애플 등의 약진으로 9곳이 바뀐 반면 한국은 HD현대와 농협이 새로 진입했을 뿐 거의 그대로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수출 품목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법제 전반에 녹아 있는 ‘한국형 차등 규제’가 성장 유인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게 경제계 분석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20일 서울 중구 대한상의 회관에서 ‘기업성장 포럼 발족 킥오프 회의’를 열고 한국 경제가 미국에 비해 역동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2005년 미국의 10대 기업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엑슨모빌 GE MS 시티은행 월마트 등 순이었는데 20년 뒤인 올해는 MS을 제외하고 9곳이 바뀌었다. 엔비디아 애플 아마존 알파벳 메타 테슬라 등 빅테크와 전기차·에너지 및 인공지능(AI) 기업이 새로 이름을 올렸다. 반면 한국은 KT와 한진이 빠진 자리에 HD현대와 농협이 들어간 것을 제외하면 8개 기업이 그대로였다. 10대 수출 품목 역시 반도체 자동차 선박 무선통신기기 석유제품 철강판 등이 자리를 유지했다. 컴퓨터와 영상기기가 빠지고 디스플레이, 정밀화학원료가 새로 들어간 정도다.
회의 참석자들은 규제는 보호 중심에서 성장 위주로, 지원은 나눠주기식에서 프로젝트 중심으로 바꿔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글로벌 패권경쟁이 치열한 첨단산업군에 한해 금산분리, 동일인 규제 등을 예외 허용하는 방안도 대안”이라며 “기업 규모가 아닌 산업별 특성에 따른 규제로 정비하되 궁극적으로는 규제 원칙만 정하고 자율 규범 체계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창범 한경협 상근부회장은 “기업 생태계의 무게 중심을 생존에서 ‘스케일 업’으로 옮겨야 할 때”라며 “기업이 성장하고 싶도록 유인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소·중견 등 특정 기업군에 한해 지원하는 정책이 소기업에서 중기업으로,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하려는 동력을 꺾고 현 상황에 안주하려는 유인을 제공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곽관훈 한국중견기업학회장은 “대기업으로 성장단계에 있는 중견기업은 재정적 지원보다는 규제 완화가 더 절실하다”며 “일정 조건을 갖춘 우량 중견기업이 사업다각화를 추진할 때 지주회사 규제를 완화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
경제3단체는 조만간 기업성장포럼을 발족시켜 정부·국회와 문제 의식을 공유하고 정책 대안을 함께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