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영향으로 신차 판매량이 주춤했던 전기차가 중고차 시장에선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거래량이 50% 가까이 급증했고 평균 시세도 유일하게 상승했다. 대표적 레몬마켓(판매자와 구매자의 정보 비대칭이 큰 시장)인 중고차 시장이 고장에 민감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전기차의 안전성에 대한 인식이 나아지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20일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 1~7월 중고 전기승용차 거래량은 2만7860대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1만8830대) 대비 48.0% 급증했다. 신차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하이브리드차의 중고 거래 증가율(20.4%)의 배를 넘는다. 휘발유(-2.8%), 경유(-11.8%), LPG(-9.5%) 차량의 중고 거래는 줄었다. 거래도 빨리 이뤄졌다. 중고차 플랫폼 케이카가 차량을 매입해 판매하는 데까지 전기차는 평균 19일(지난 5월 기준)이면 충분했다. 휘발유차는 33일, 하이브리드차는 43일 걸렸다.
중고차 시세도 전기차만 올랐다. 케이카가 올해 1월과 7월의 중고차 시세 변화를 분석한 결과 전체 평균 시세는 약 4.4%(1939만→1853만원) 떨어졌지만 전기차는 0.8% 올랐다. 하이브리드차의 하락 폭이 5.7%로 가장 컸다. 특히 투싼 4세대 하이브리드(-9.8%), 더 뉴 싼타페 하이브리드(-9.7%), 더 뉴 그랜저 하이브리드(-9.2%) 등 구형 하이브리드의 감가 폭이 컸다. 휘발유(-4.9%), 경유(-4.1%), LPG(-4.6%) 차량도 평균 시세가 떨어졌다. 케이카 관계자는 “휘발유나 LPG 차량에 비해 경유차의 시세 하락 폭이 낮은 건 단종한 차량에 대한 수요가 중고차 시장으로 유입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중고차 구매를 희망하는 소비자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인 중 하나가 품질이다. 소비자가 매물의 정확한 상태를 확인하기 어렵다 보니 고장 등에 대한 불안감이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기차가 내연기관차에 비해 고장이 덜하다는 인식 확산이 전기차의 중고 거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중고차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는 내연기관차보다 부품 수가 30~40% 적고 부품 교체 주기가 비교적 길기 때문에 이런 부담에서 비교적 자유롭다”고 말했다.
독일자동차협회(ADAC)에 따르면 전기차 1000대당 고장 발생 건수는 4.2건으로 내연기관차(10.4건)의 절반 수준이다. 지난해 8월 인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 화재 사고 이후 추락했던 전기차 신뢰도가 어느 정도 회복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의무 운행 기간을 끝낸 전기차가 중고 시장에 쏟아져 나온 것도 한몫했다. 전기차를 살 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보조금을 받으면 2년 동안 팔거나 처분할 수 없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