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20일 이재명 대통령 실명을 거론하며 “한국은 외교 상대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북한의 잇단 대남 비난에 첫 유감을 표명하면서도 대북 유화 정책은 지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부는 북한의 강경 메시지 속 대화 재개를 위한 조건 제시 부분 등을 평가하며 문재인정부 당시 대남 비난 도중 대화에 나섰던 사례들을 강조했다.
김 부부장은 대외 선전 매체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보도된 외무성 국장 협의회 발언에서 “보수 간판을 달든, 민주 감투를 쓰든 우리 공화국에 대한 한국의 대결 야망은 추호도 변함이 없이 대물림해 왔다”며 “리재명은 이러한 역사의 흐름을 바꿔놓을 위인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지난 18일 을지국무회의에서 “작은 실천이 조약돌처럼 쌓이면 상호 간 신뢰가 회복될 것”이라고 말한 데 대해서도 “조항 조항이 망상이고 개꿈”이라고 힐난했다.
김 부부장은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자유의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를 ‘무모한 침략전쟁연습’으로 규정하고 “리재명 정권은 ‘방어적 훈련’이라는 전임자들의 타령을 그대로 외워대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번 합동 군사연습에서 우리의 핵 및 미사일 능력을 조기에 제거하고 공화국 영내로 공격을 확대하는 새 연합작전계획(작계 5022)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작계 5022’는 기존보다 고도화한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에 대한 대응 계획을 보완한 것으로 북한의 핵무기를 현실적 위협으로 인정하고 수립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북 당국자가 우리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왜곡해 표현하는 것은 유감”이라며 공식 대응했다. 대통령실은 그러나 북한의 진의가 완전한 적의에 기인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북측의 메시지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면서 “이번 메시지는 남북 대화의 전제조건은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점을 격렬한 언어로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때를 생각해보라. 하루가 멀다하고 미사일 쏘고 격렬하게 비난하다가도 평창동계올림픽에 내려올 때는 이틀 전에 통보하고 왔다”며 “김 부부장이 한 마디 했다고 북측이 남북 대화를 아예 거절한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숨겨진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보 분야 핵심 당국자도 “북측은 물을 마시고도 이를 쑤실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발언에 일희일비해서는 절대 안 된다”며 “북한은 지난 5월 15일 이후 미사일 발사를 중단했고, 서북도서에서의 적대 행위도 전면 중단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비난 성명을 낼 뿐 안보 불안을 일으키는 도발은 자제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논평이 한·미 연합훈련과 오는 25일(현지시간)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을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정부는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자유의방패’(UFS·을지프리덤실드) 연습 중 야외기동훈련(FTX) 일부를 연기하는 일종의 ‘성의’를 보였지만 북한은 대화의 전제조건이 완전한 연합훈련 중단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다음 주 있을 이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남북 비핵화 문제를 함부로 논의하거나 합의하려 하지 말라는 뜻 아니겠느냐”고 내다봤다.
박준상 최승욱 기자 junwit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