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기독교인 형제자매들에게

입력 2025-08-23 00:3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해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문안드립니다. 또 각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분들에게도 문안드립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 선생이 각 지역 신자들에게 보냈던 편지의 문안 구절을 인용해봤습니다. 요즘 한국교회 상황을 지켜보면서 간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여러분에게 문안드리고 싶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올해 기독교 선교 140년을 맞았습니다. 이러한 때 교회는 신앙의 성숙을 추구하고 여러 모양으로 한국 사회를 섬기려 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근현대사 속에서 민족과 질고를 함께했습니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사명으로 여겨 달려가고 있지만 작금의 상황 한편은 정반대로 보입니다. 마치 바닥 없는 무저갱 속으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비단 저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지금 우리 신앙 공동체는 심히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말씀드리기 매우 송구하오나 지금까지 한국교회 역사에서 이렇게 혼탁하고 이상이 보이지 않았던 때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는 기독교인의 희생과 헌신, 기독교적 세계관 발현을 통해 건강한 사회 건설을 도모했습니다. 허나 지금은 이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정치와 신앙의 기괴한 혼합으로 만들어진 구호만 요란할 뿐 변혁적 기독교운동이나 심오한 사상, 신학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지난 수년을 돌아보면 광장의 신앙이 과도하게 표출됐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광장 기독교를 한국교회 전체로 인식하게 됐습니다. 교회 이미지가 한순간에 바뀌었습니다. 전직 대통령과 배우자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면서 드러나는 양상은 신앙 공동체를 한없이 부끄럽게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비난할 수 없습니다. 우리 역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대신 이생의 축복과 편안함을 구가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알고는 있지만 그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듣기만 해 자신을 속이는 사람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요.

권위를 가진 영적 지도자도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설사 그분들이 계셔도 이 악한 세대는 더 이상 그들의 말을 경청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목회자 형제자매들이 설교를 통해 탄식했던 것처럼 지금 우리는 고대 판관기 시절 경구인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구약성경 전도서의 말처럼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봐야 합니다. 지금은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그 기본을 고 김명혁 목사가 정리한 ‘약함’ ‘착함’ ‘주변성’이란 열쇳말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기독교는 약함의 종교입니다. 연약한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합니다. 착함이란 자기 유익 대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주변성이란 교회와 기독교인이 사회나 국가의 중심에 서기보다 주변에 머물며 소외된 이웃들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크리스텐덤(기독교제국)이 허망한 신기루요 인간의 욕망이었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우리가 추구할 중심은 예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광장이 아니라 골방으로 들어가야 할 때입니다. 큰 목소리를 낼 게 아니라 침묵으로 기도할 때입니다. 자기를 드러낼 게 아니라 보이지 않게 이웃과 함께할 때입니다. 이는 초기 교회 신자들의 생활 방식이었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정직하게 살았는데 손해를 보셨다고요. 의로운 일을 하다가 고난을 겪는다고요. 기뻐할 일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그렇게 모욕과 환난을 겪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습니다.

내일은 예수 부활을 기념하는 주의 날입니다. ‘킹 오브 킹스’ 되시는 예수만으로 세상에 없는 희락을 맛보시길 기도합니다. 주제넘은 소리를 해서 죄송합니다. 길가에 돌 하나가 굴렀다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냥 발로 차버리셔도 좋습니다.

신상목 종교국 부국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