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물류센터에 알바를 나간 둘째 날은 힘들었다. 물건을 찾아 집품 박스에 넣은 후 컨베이어벨트에 싣는 게 그날 일이었다. 집품이라고 한다. 첫날과는 달리 작업 대기장에서 관리자를 따라 내려간 곳은 쌀 포대나 세제 박스 등 가장 무거운 물건들이 있는 창고였다.
30명쯤 알바들이 모였을 때 관리자가 나와 작업을 지시하는 단말기를 나눠줬다. 그리고 간단한 작업 조항과 주의사항을 알려줬다. 주로 집품 박스를 실은 카트를 끌고 갈 때 앞뒤를 잘 살펴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안전 사항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30분쯤 지나 손에 들고 다니는 단말기에서 대형 카트 집품을 하라는 지시가 떴다. 집품 박스를 싣지 않고 여러 개 물건을 쌓아 올리는 작업이다. 관리자 자리 앞에 있는 대형 카트를 잡고 지시대로 4㎏ 쌀포대 20개, 3ℓ 세제 4개들이 박스 10개를 차곡차곡 쌓자 단말기에 ‘성공’이라고 경쾌하게 떴다.
두 번째 작업도 대형 카트였다. 카트를 집어 단말기가 시키는 대로 4㎏ 쌀포대, 3ℓ 세제 4개들이 박스를 싣는데 허리가 아프고 숨이 가빠왔다. 그래도 꾹 참고 1ℓ 샴푸 6개들이 박스 10개, 음료 캔 24개들이 박스 20개를 헉헉거리며 쌓아 올렸다.
카트에는 내 키보다 높이 물건들이 쌓였다. 이걸 어떻게 끌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런데 단말기가 멈추지 않고 계속 물건을 쌓으라고 지시했다. 도저히 더 쌓을 데가 없어 카트를 끌고 관리자 자리로 찾아갔다.
물건이 너무 많아 무거워 카트 바퀴가 구르지 않았다. 겨우 힘을 주어 밀면 바퀴가 제멋대로 움직여 마구 굴러갔다. 그걸 잡으려다 바닥에 펄썩 넘어졌는데 서러워 눈물이 났다. 겨우 관리자 자리에 도착하니 노란색 조끼를 입은 관리자가 있었다.
“물건을 더 쌓을 데가 없어요”라고 말하자 노란 조끼가 화를 냈다. “눈높이보다 높이 쌓으면 안 되는 거 몰라요?” 주눅이 들었다. “단말기가 멈추라고 하지 않는데…”라고 겨우 말하자 노란 조끼가 단말기를 확인하더니 버튼을 눌러 버렸다.
그러고는 눈높이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물건들을 내리라고 말했다. 어떻게 쌓아올린 물건들인데 다시 내려야 한단 말인가. 내 실수도 아닌데. 눈높이보다 높이 쌓으면 안 된다고 아침 조회 때 알려주지도 않았다. 서러움이 폭발했다.
얼굴이 빨개져 서 있는데 관리자석에서 빨간 조끼가 나오더니 노란 조끼에게 눈치를 줬다. 나를 부르더니 단말기를 보고 작업을 멈출 수 있는 버튼을 알려줬다. 그리고 다음 작업을 하러 가라고 말했다. 눈에 눈물이 좀 고여 있었다.
“휴!” 한숨을 쉬고는 단말기를 다시 보자 일반 카트로 바뀌어 있었다. 일도 좀 익숙해져 그럭저럭 하고 있는데 눈앞에 작은 초콜릿이 들어왔다. 빨간 조끼가 서 있었다. “봉지가 뜯어진 게 있어서요”라고 말하더니 주고 가버렸다. 초콜릿을 먹자 힘이 났다. 통로에서 관리자가 똑같은 말을 다른 알바에게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에나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다.
김로운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