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인사가 관장으로 왔다. 유홍준(76)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 얘기다. 1993년부터 장기간에 걸쳐 출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 덕분에 그의 인기는 연예나 스포츠 분야 인사들이나 가능한 ‘셀럽(셀러브리티)’ 수준이 됐다. 예능 프로에도 여러 차례 나왔다. 인문학 대중서로 이룬 성취라 더 놀랍다.
신임 관장의 이름값은 바로 입증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용산 개관 20주년을 맞아 마련한 ‘새 나라 새 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전시에 대해 신임 관장이 소개하는 특별 강연을 마련했는데, 온라인 접수 3시간 만에 마감됐다. 400석 대강당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바로 옆 교육관에서 생중계 영상을 보는 청중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자신감 때문일까. 유 관장은 앞서 이례적으로 임명 사흘 만에 기자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그런데 유명인을 관장으로 맞이하는 내부 직원의 기분은 어떨까. 취재 경험상 ‘정권 실세’가 오면 개인적 평판과 상관없이 반기는 게 정부 부처의 분위기였다. 인력과 예산 따기가 수월한 측면이 있어서다. 유명인에게서도 그런 ‘파워’를 기대할 수 있으니 관장 이름값은 플러스 요인이다. 이는 관람객 유치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특강에 몰린 청중이 증명하는 것처럼 말이다.
관람객 유치 측면만 보자면 유 관장의 이름값은 김이 좀 샜다. 공교롭게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일명 ‘케데헌’ 열풍 덕에 국립중앙박물관이 K컬처 성지로 우뚝 선 즈음에 그가 관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케데헌 덕에 안 그래도 증가 추세인 국립중앙박물관 관람객은 폭발하듯 늘었다. 개관 전부터 오픈런이 연출됐다.
그런데 이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전시장이 아니었다. 대체로 뮤지엄 숍이었다. 까치호랑이 배지, 흑립 갓끈 볼펜, 갓 키링, 곤룡포 비치 타월 등 케데헌 캐릭터 인기가 낳은 K굿즈를 사기 위해서다. 굿즈 사랑이 한국 전통 미술 자체에 대한 사랑으로 바로 연결되는 건 아니지 않나. 전시 관람 욕구로 연결되려면 불쏘시개가 필요하다.
신임 관장의 장점이 ‘호출’돼야 할 지점은 여기 같다. 유 관장이 지금까지 보여준 통찰적 안목, 대중적 전달력, 대중과의 공감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연구에만 천착해온 학자들이라면 쉽지 않은 능력이다. 그는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 3대 청장(2004∼2008) 재직 시절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해 문화재청 위상을 끌어올렸다는 게 내부의 평가다.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 산하에 문화재보존과학센터(현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를 출범시킨 것은 주요 업적으로 꼽힌다. “우리 문화유산의 상태를 진단, 적극 치료하는 ‘문화재 종합병원’의 설립이 필요하다”며 일상적인 비유를 써서 인력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예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지금 박물관은, 아니 국립중앙박물관은 사회적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K컬처의 위력으로 세계가 한국으로 몰려오는 시대가 됐다. 유 관장이 기자간담회에서 40여 년 전에 성공시킨 ‘한국 미술 오천년’ 해외 전시를 다시 세계 순회전 형식으로 선보이겠다고 했을 때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일부에서 나온 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상파 전시나 바로크 전시 등 서구 미술 블록버스터 전시를 해서 문화적 만족감을 주는 역할도 이제는 벗어던져야 한다. 오히려 ‘갓끈’으로 비유하든 ‘곤룡포’로 비유하든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를 열광케 하는 ‘토종 블록버스터’ 전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럴 때 유 관장 특유의 안목과 개념화, 대중 친화적 언어화 능력이 요구된다. 이것이 국립중앙박물관의 ‘유홍준 활용법’이 아닐까 싶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