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작은 혜택에도 감사해야 하나

입력 2025-08-21 00:37

최근 ‘병역명문가증’이란 걸 발급받았다. 신청해서 발급받기까지 한 달 조금 안 되게 걸린 것 같다. 신청해 놓고 주변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우리 가족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됐다. 조건이 무척 까다롭다. 1대(할아버지)부터 3대(손자)까지 모든 남성 구성원이 기본적으로 현역 복무를 마쳐야 한다. 주변에는 의외로 할아버지가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집도 많다. 2대와 3대 ‘모두’ 현역으로 군에 갔다 온 사람들도 드물었다. 그래도 생각보다 병역명문가증을 발급받은 사람들이 꽤 많다. 병무청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니 병역명문가증을 올해 발급받은 제대군인은 6813가문에 3만1642명이나 됐다.

병역명문가 제도가 도입된 건 2004년이었다. 병무청은 “국방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한 사람의 자긍심을 높이고, 희생과 헌신에 존경과 감사하기 위해”라고 도입 취지를 설명한다. 딴지를 걸자면 제대 군인 중 자긍심 높은 사람이 얼마나 될지, 주위 사람 중에 희생과 헌신에 존경과 감사를 표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애초 도입 배경에도 의심이 간다. 2000년대 초반 각종 병역 비리 사건에 덧붙여 일부 특권층의 병역 면제 논란도 커지면서 생긴 사회적인 불만을 잠재우려는 의도가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병역명문가증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 리스트는 꽤 길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운영 시설, 민간시설 등의 이용료나 주차요금을 면제·할인해주는 등의 우대 혜택이 있다. 이런 혜택이 있었나 싶게 딱히 눈길을 끄는 것은 없다.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제기한 보도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나마 시중보다 다양한 생활용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군 영외마트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게 혜택이라면 혜택일 수 있겠다. 아직 이용은 안 해봤지만 그래도 26개월이라는 시간을 군에서 보낸 후 국가에서 처음 받아보는 혜택이라 감사할 따름이다. 사실 한국에서 제대 군인들이 받을 수 있는 국가의 혜택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올해 들어 새 전역증을 발급받는 사람들이 꽤 늘고 있다는 얘기들이 들린다. 미국에서는 미국 주요 관광지를 비롯해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 매장에서도 군인 할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대상은 현역이나 전역한 미군이 대상이지만 한국의 전역증도 통한다는 기대가 작용한 결과다. 한국에는 없는 혜택을 미국 여행할 때 한번 받아보자는 것일 거다. 실제 동등하게 모든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볼 수는 없지만 자그마한 혜택이라고 받아보려는 마음들에 씁쓸하기만 하다.

혜택은 고사하고 대한민국에서 군에 대한 인식도 좋지 않다. 징병제 국가에서 모병제 국가인 미국과 단순 비교는 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는 국방의 의무가 보상 없는 희생이자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미국은 군 복무가 애국심과 명예로 이어진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치러 온 미국이 군인들의 실제 희생을 목격한 경험도 작용했을 수 있다. 한국인의 기억에는 전쟁은 사라졌고 그 자리에 군사독재 정권의 암울함과 쿠데타의 충격만이 남아 있다.

최근 롯데리아의 미국 1호점에서 미군들이 긴 줄을 패스해서 특별 대우를 받았다는 얘기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식당에서 군인들에게 밥값을 대신 내줬다는 얘기가 종종 들려온다. 미국은 군을 존중하는 마음이었겠지만 한국은 분명히 측은한 마음이 작용한 결과였을 것이다. 언제까지 한국에서 군인들이 안쓰러운 존재로 남아 있어야 할까. 군 복무가 사회적 자긍심과 존중으로 이어지는 문화적 토양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병역명문가증은 그저 유명무실한 하나의 플라스틱 카드에 머무를지도 모른다.

맹경환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