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전쟁이 시작된 후 뉴스에 자주 등장해 익숙해진 명칭 중 하나가 돈바스(Donbas)다. 돈바스는 ‘도네츠강 유역의 석탄 분지’(Donets Coal Basin)를 줄여 일컫는 말인데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의 2개 주를 가리킨다. 이름 자체가 말해주듯 이 지역엔 우크라이나 최대 석탄 지대가 있어 일찍부터 광공업과 금속공업이 발달했다. 러시아계 주민도 많아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세력이 암약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침공할 당시의 명분도 이 지역 러시아계 주민 보호였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 합병 당시부터 돈바스 지역의 친러시아 세력을 지원해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전투를 벌이게 하는 등 사실상의 전쟁에 돌입했다. 돈바스 지역의 전쟁은 벌써 10년이 넘은 셈이다.
러시아군은 현재 루한스크 주 전체와 도네츠크 주의 75%를 장악하고 있다. 돈바스 전체 지역의 88% 정도가 러시아군 수중에 넘어간 것이다. 그럼에도 러시아군이 돈바스 지역 모두를 장악하려면 향후 몇 년이 걸릴지 알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군이 견고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새 벨트’(Fortress Belt)로 불리는 방어선은 도네츠크 주의 산업도시 4곳과 여러 마을에 걸친 약 50㎞ 거리에 조성됐다. 밀집된 건물과 산업 시설을 자연 장벽으로 삼고 여기에 철조망과 소위 ‘용의 이빨’로 불리는 전차 차단용 콘크리트 등을 겹겹이 쌓았다. 깊은 참호와 벙커, 지뢰밭 등도 설치했다. 러시아군은 2014년 이후 계속 점령을 시도했으나 단 한 번도 이 방어선을 뚫지 못했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요새 벨트가 포함된 돈바스 지역의 할양을 요구했는데 이곳을 점령하기 어렵다는 점을 실토한 것이나 다름없다. 10여년의 전쟁으로도 얻지 못했던 곳을 담판으로 얻어내겠다는 것인데 대단한 협상 전략이라고 해야 할지 뻔뻔하기 그지없는 모략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