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복구·자립 지원·도시락 나눔… 지역사회 품는 복음 실천

입력 2025-08-21 03:07
주안장로교회 목회자와 장로 등 중직자와 주안복지재단 직원 등 40여명이 최근 충남 예산의 한 농가에서 수해를 입은 농작물과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장대비가 쓸고 간 농촌 현장은 아직도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 최근 방문한 충남 예산 오산리의 한 농가. 비닐하우스 6개 동이 물에 잠기며 방울토마토 등 농작물은 모두 썩어버렸다. 길목엔 토사와 쓰레기가 뒤엉켜 있었고, 축 늘어진 넝쿨 사이로 죽은 작물이 농부의 시름을 드러냈다.

이른 오전부터 주안장로교회(주승중 목사) 목회자와 장로 등 중직자와 주안복지재단 직원 등 40여명이 수해 복구 자원봉사에 나섰다. 봉사자들은 저마다 조끼와 장화를 갖추고 비닐 제거, 자재 정리 등 현장 복구를 도왔다. 땀방울이 흐르는 현장은 긴급 구호라기보다 이웃을 살피는 연대의 모습이었다.

김연숙(60)씨는 홀로 이 농장을 꾸려오다 수해를 맞았다. 그는 “물에 3일 잠기니 수확물이 다 썩어 없어졌다”며 “손도 못 댄 채 막막했는데 교회와 재단이 함께 도와줘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피해 규모는 예상보다 컸다. “한 동당 1200주, 661㎡ 규모인데 다 죽어버렸다”는 김씨의 설명처럼 품값과 자재비까지 고려하면 손실은 감당하기 어렵다. 일손조차 구하기 힘든 농촌 현실에서 홀로 농장을 운영해온 그에게 이번 수해는 치명타였다. “씨앗 값도 못 건진다”며 허탈해하는 그의 눈빛은 무너진 농심을 드러냈다.

봉사자들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묵묵히 땀방울을 흘렸다. 봉사자 중 한 명인 이병철 장로는 “2~3시간에 불과하지만 정성과 책임, 그리고 나눔의 마음을 담았다”며 “봉사의 깊이는 시간보다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고 했다.

함께 도움의 손길을 보태던 주승중 목사는 “한국교회는 초대교회 때부터 민족의 아픔과 함께했다”며 “오늘의 작은 봉사도 선교적 삶의 실천”이라고 말했다. 그는 “교회가 지역사회와 함께 아픔을 나누고 공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지도자들이 먼저 현장을 경험해야 공동체성이 회복된다”고 강조했다.

짧지만 깊이 있는 수해 복구 봉사의 뒤편에는 지난 10여년간 지역과 함께해온 주안복지재단의 구조적 돌봄 사역이 자리하고 있다.

지역을 품은 선교적 구조

주안장로교회는 2014년 주안복지재단을 설립하며 신앙의 가치가 지역사회 속에 뿌리내리도록 노력했다. 재단은 ‘서로 돌봄’을 주제로 도시락 나눔, 가족 축제, 아동 돌봄, 장애인 자립 지원 등 전 영역에서 복지 사역을 펼치고 있다. 단순 자선 활동을 넘어, 교회·행정·주민이 함께 참여하는 선교적 구조를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대표적 사례는 도시락 나눔사업이다. 자원봉사자들이 교회에서 정성껏 도시락을 포장하면 행정복지센터 사회복지사가 이웃 가정에 직접 전달한다. 단순히 밥을 제공하는 일이 아니라 교회와 공공, 주민이 책임을 나누는 공동체적 돌봄 모델이다. 이 과정에서 봉사자들은 “그리스도의 섬김을 삶으로 본받고 싶다”는 고백을 남기며 이웃과의 연결을 경험한다.

가족 축제 또한 지역 정서 회복의 장으로 자리 잡았다. 주안복지재단 산하시설인 부평구 건강가정지원센터와 연수구 가족센터는 매년 수백 가정을 불러 모아 세대 간 대화를 회복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놀이와 공연, 먹거리 마당이 어우러진 자리에서 가족들은 웃음을 나누고 즉석 사진 부스를 통해 공동체 속 소속감과 따뜻함을 되살린다.

‘피로회복’ 캠페인 참석자들이 헌혈 등록을 하는 모습. 주안복지재단 제공

주안장로교회는 생명을 살리는 ‘피로회복’ 캠페인을 통해 정기적인 헌혈 운동을 펼쳐 지역사회 혈액 부족 문제 해결에 동참하고 있다. 또 매년 겨울 연탄 나눔 사업을 이어가며 교회와 재단 봉사자들이 직접 지역 곳곳에 연탄을 배달한다. 따뜻한 온기를 전하는 이 사역은 단순한 물질 지원을 넘어 이웃의 삶을 지탱하는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다.

약자를 위한 활동, 복음의 실천

재단의 돌봄은 특히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된다. 학대 피해 아동을 위한 ‘서로이음’은 단순한 보호 공간이 아니라 정서적 회복과 신뢰 회복의 여정이 시작되는 쉼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보육사들은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신뢰를 쌓고, 심리·의료 지원도 연계한다. 약자를 향한 복음적 시선이 구체적 형태로 구현되는 공간이다.

발달장애인들이 바리스타로 일하는 ‘어울림 카페’도 눈길을 끈다. 주민들이 커피 한 잔을 매개로 장애인 근로자와 대화를 나누며, 돌봄의 주체와 객체가 구분되지 않는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된다. 일터가 곧 선교적 현장이 되는 셈이다.

이밖에도 재단은 나래장애인주간보호센터와 다함께돌봄센터를 운영하면서 각각 발달장애인의 일상 자립을 돕고 방과 후 아동의 안전망 역할을 맡는다. 교회는 “하나님은 약자와 함께하신다”는 신앙적 확신을 기반으로 복지망을 확장하며 사회의 취약한 고리를 잇고 있다.

주안복지재단 이사장인 주 목사는 “교회의 복지 사역은 단발적 자선이 아니라 복음의 실천”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교회는 안정적 재정 지원과 자원봉사 구조를 마련하고, 공공기관과의 협력을 신뢰 속에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주 목사는 “교회의 공공성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며 “지역사회 속에서 지속 가능한 선교적 삶을 이루는 것이 한국교회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예산=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