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소설을 처음 읽고 영화로 옮기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 20년이 다 됐습니다. 사춘기 시절부터 읽은 수많은 미스터리 소설 중 이토록 영화로 만들고 싶었던 작품은 없습니다. 빨리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3년 만에 신작 ‘어쩔수가없다’로 돌아온 박찬욱(62) 감독은 19일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다른 미스터리물과 다르게 이 작품은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르려는 사람이 등장한다”며 “멀쩡했던 보통 사람이 사회 시스템에서 내몰리는 과정과 그 심리를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개봉하는 영화는 아내(손예진)와 두 자녀를 둔 가장 만수(이병헌)가 25년간 헌신한 제지공장에서 덜컥 해고된 뒤 어렵게 장만한 집과 가족의 생계를 지키기 위해 재취업에 나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박 감독 특유의 아름다운 미장센과 드라마틱한 전개, 견고한 연출에 블랙코미디가 어우러진다.
한국영화로는 ‘피에타’ 이후 13년 만에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30회를 맞은 올해 부산영화제 개막작에도 선정됐다.
작품에는 박 감독이 “긴 세월 눈여겨본” 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주인공 만수를 연기한 이병헌 외에는 전부 처음 호흡을 맞췄다. 만수의 아내 이미리 역은 손예진, 제지회사 반장 최선출 역은 박희순, 재취업을 노리는 제지업계 베테랑 구범모 역은 이성민, 범모의 아내 이아라 역은 염혜란, 제지업계 기술자였지만 해고당한 구둣가게 직원 고시조 역은 차승원이 맡았다.
배우들은 박 감독 작품이란 이유만으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입을 모았다. 출산 이후 처음 스크린에 복귀한 손예진은 “감독님과의 작업이 궁금해 신인의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밝혔다. 박희순은 “웃음 강도와 페이소스(연민과 슬픔의 감정)가 커지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감독님이 칸영화제를 포기하고 천만 흥행을 노리나 생각했다”며 웃었다.
박 감독과 이병헌은 ‘공동경비구역 JSA’(2000) ‘쓰리, 몬스터’(2004)에 이은 세 번째 만남이다. 이병헌은 “과거엔 연기만 하느라 몰랐는데 20여년 만에 감독님과 작업하면서 얼마나 디테일하게 모든 부분을 챙기는지 알게 됐다. ‘거장이 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나는 못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어쩔수가없다’ 제목엔 나쁜 짓을 합리화하는 비겁한 정서가 담겨 있다”면서 “구조조정은 당하는 사람도 슬프지만 행하는 사람도 늘 ‘어쩔 수가 없다’고 말한다. 각자의 입장이 충돌해 빚어내는 비극을 보여드리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무겁지만은 않은 영화를 만들려고 했다”며 “사람 사는 일은 슬픈 사연도 들여다보면 우스운 구석이 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극장용 영화를 택한 이유에 “구석구석 매만지며 공들인 작업이 큰 스크린과 좋은 스피커, 중간에 멈출 수 없는 폐쇄된 환경에서 감상 됐으면 한다”며 “100년 후 미래세대도 찾아볼, 오래 살아남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천만 흥행을 노리냐는 물음엔 “언제나 그걸 목표로 해 왔다”며 웃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