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원로목사의 간증이다. 6·25 때 비행기 폭격으로 그가 다니던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가 불탔다고 한다. 특히 교무실이 직격탄을 맞았다. 모두들 울고불고 야단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원로목사님은 어린 마음에 속으로 춤을 추었다고 했다. 자신의 생활기록부와 성적표가 다 불탄다는 생각 때문이었단다. 그로서는 옛날의 아픔이 불탔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성적표도 열등감도 신이 났다.
제목이 섬뜩한 영화가 있다. 영화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인데, 고등학생 네 명이 여름밤 사고로 한 남자를 치고 도망친 후 그 사건을 은폐하면서 벌어지는 공포를 그린 내용이다. 그들은 1년 후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는 익명의 편지를 받으며 불안에 휩싸인다. 각자 정체불명의 인물에게 쫓기기 시작하고 친구들이 하나둘씩 죽음을 맞이하면서 공포는 극에 달한다.
영화는 사람을 죽인 이야기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나는 네가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한 일을, 그것도 은밀히 한 일을, 심지어는 마음속으로 한 일을 다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면 얼마나 공포스럽겠는가.
모든 기억이 다 축복은 아니다. 어떤 기억은 덫이다. 붙잡을수록 아프고 앞으로 전진을 못 하게 발목을 잡는다. 달려가는 힘뿐 아니라 멈추는 힘이 필요하고 기억하는 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망각하는 힘이다. 어찌 보면 기억하는 힘보다 망각하는 힘이 더욱 중요하다. 무엇을 기억하는 데서 오는 건강한 에너지보다는 망각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파괴의 에너지가 더욱 크기에 그러하다.
사람은 하루에 5만 가지의 생각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95%는 어제 했던 생각의 반복이라고 한다. 인간의 불행은 기억할 것을 기억하지 않고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을 늘 기억한다는 데 있다.
디지털카메라에는 ‘딜리트(Delete)’ 버튼이 있다. 촬영 후 보니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이 있다. 흔들린 사진,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 표정이 어색한 사진. 이런 사진들을 계속 저장해두면 메모리카드만 차지할 뿐이다. 지워야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나쁜 기억, 억울한 기억, 슬픈 기억을 지워야 한다. 지우고 비워야 좋은 기억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솔로몬 셰르셉스키는 ‘미스터 메모리’로 불리며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고의 기억의 천재다. 그는 복잡한 수학 공식,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음절도 모두 외웠다. 더구나 10년이 지난 후에도 과거 몇 날 몇 시에 들었던 말을 기억했다. 하지만 그는 갈수록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결국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다. 기억의 천재는 행복하지 않았다. 망각의 은혜가 없었기 때문이다. 망각은 하나님의 큰 축복 중의 하나다.
정원사는 가지치기를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나무라도 불필요한 가지들을 쳐내지 않으면 제대로 자랄 수 없다. 죽은 가지, 병든 가지, 엉뚱한 방향으로 자라는 가지들은 과감히 잘라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명의 열매를 맺기 위해 가지치기를 해주신다.(요 15:2) 최고의 가지치기 중 하나는 ‘망각의 가지치기’다. 회개한 나에게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주홍빛 같은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십자가로 덮어 주신다고 하셨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잊었다.” 땡볕같이 내리쬐던 그날에 지은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하신다. 은혜 중의 은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의 은혜에 눈물이 난다.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사 43:25)
한재욱 목사 (강남비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