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 냉랭한 남북, 훈풍 부는 북·중

입력 2025-08-20 00:32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측근들이 중국을 방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교도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인민군 소장인 김복남과 조선노동당 고위간부가 지난달 중순 이후 두 차례 중국을 비공개 방문했다고 전했다. 최근 여러 차례 김 위원장의 건설현장 현지지도를 근접 수행한 장면이 포착된 인물들이다.

교도통신은 양국 접경지역 인프라 건설 관련 방문으로 추정했지만, 중국의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김 위원장의 방중에 대비한 사전답사일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들은 김 위원장이 다음 달 3일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승전 80주년 행사에 참석하거나 연내에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본다. 김 위원장과 시 주석은 2018~2019년 다섯 차례 정상회담을 했지만, 그 후로는 만난 적이 없다.

왕야쥔 북한 주재 중국대사의 행보도 활발하다. 왕 대사는 지난 13일 평양 김정숙방직공장을 찾아 북·중 기업 간 교류 확대 의지를 밝혔다. 12일에는 평양 조선혁명박물관을 방문해 광복 80주년을 맞아 양국의 단결과 공동대응을 강조했다. 의례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 협력 확대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에는 북·중이 2020년 1월 중단된 평양-베이징 국제여객열차 운행 재개에 합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중국의 한 철도교육기관은 올해 상반기 북한의 철도 전문 인력을 대거 초청해 연수·훈련을 지원한 사실을 공개했다. 양국 간 열차 재개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풀이된다. 북한 국가관광총국이 운영하는 조선관광 사이트에도 ‘국제렬차시간표’라는 제목으로 평양-베이징, 평양-단둥 구간 시간표가 올라왔다. 중국 해관총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북·중 간 무역총액은 12억6075만 달러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약 30% 증가했다. 중국의 대북 수출이 약 33% 증가한 10억5084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북한의 건설 붐으로 건축용 자재와 가구 등의 수출이 급증했다.

북·러 밀착으로 소원해진 북·중 관계가 개선 조짐을 보이는 것은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과 관세·무역전쟁 등 전략 경쟁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최대한 우군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러시아와 너무 밀착해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북한은 중국에 경제적으로 종속되는 것을 경계해왔는데 러시아와 관계 강화를 통해 해법을 찾았다. 북·러는 북한군의 우크라이나전쟁 파병 이후 ‘혈맹’ 수준으로 가까워졌다. 지난 4월에는 국경인 두만강에서 자동차용 교량 착공식도 가졌다. 이 교량이 완공되면 철도에만 의존해온 양국 교역과 교류가 대폭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북한 입장에선 러시아라는 뒷배를 확보해 중국과 경제교류를 확대해도 일방적으로 끌려갈 위험이 줄어든 셈이다.

북·중·러와 달리 남북 관계는 새 정부 출범 후에도 여전히 냉랭하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지난 14일 이재명정부의 관계 개선 노력을 “허망한 개꿈”이라고 조롱하면서 “미국의 충성스러운 하수인이고 충실한 동맹국인 한국과 관계를 개선할 의지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중·러를 등에 업고 미국과 직접 담판에 나선다면 한국은 패싱당할 가능성이 크다. 한반도의 명운을 논의하는 장에서 한국이 소외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미국을 설득해 한국과 함께 3자 테이블을 만들 수 있도록 외교력을 총동원하고 대북 영향력을 회복한 중·러와 소통·협력도 강화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이 급물살을 타고 있는 만큼 한반도에도 이르면 연내에 변곡점이 마련될 수 있다. 정부 출범 이후 2개월 넘게 미뤄진 중·러 주재 대사 임명부터 서둘러야 한다.

송세영 베이징 특파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