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플러스] 집서 2㎞ 이내?… 완화된 ‘제주도 차고지증명제’ 논란 여전

입력 2025-08-21 02:19
제주시 연동 주민센터에서 19일 한 시민이 차고지 증명제 안내문을 들고 있다.

올해 초 시행 대상을 크게 줄인 제주도 차고지 증명제가 여전히 논란의 중심에 있다. 도민들에게 불편과 부담을 지우면서 정작 실효성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도 여전히 11만대 이상의 차량이 자기 차고지를 증명해야 한다. 세심한 고려 없이 도입하고 정책 폐지의 부담을 ‘일부’ 도민들에게 전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차 여건 상관없이 일괄 적용

차고지 증명제는 자동차 소유자에게 자동차 보관 장소 확보를 의무화한 제도다. 신차를 구매하거나 주소를 변경할 때, 자동차 소유권을 이전 등록할 때 차고지 증명이 필요하다. 차량 증가와 불법 주차를 억제하기 위해 2007년 전국 최초로 도입해 2022년부터 도 전역, 모든 차종을 대상으로 전면 시행에 들어갔다.

이에 따라 제주도민들은 거주지에 차고지를 만들거나, 자기 차고지가 없는 경우 거주지로부터 일정 거리에 있는 유료 주차장을 돈을 내고 빌려야 한다.

하지만 주택 부지에 차고지를 개설할 공간이 없거나, 집 주변에 유료주차장이 부족한 동네에서는 차고지를 확보하기 어렵다. 집 주변 공터에 주차 공간이 넉넉해도 매년 수십만원을 내고 유료 주차장을 빌려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공동주택에서는 주차 면수와 관계없이 차고지 등록을 수용해 개인주택 거주자들과의 형평성 논란도 제기된다.

가장 큰 문제는 차고지 증명 과정에서 편법이 난무한다는 점이다. 주차장을 빌려 차고지를 증명한 뒤 차는 집 앞 골목에 세우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서류상 주차 계약을 맺는 위법 사례도 흔하다. 지역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도 전역에 일괄 도입하면서 형식적인 차고지 임대 정책으로 전락해 버렸다.

그동안 차고지 실제 이용 여부에 대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제도 자체에 설득력이 떨어지다 보니 차고지증명 미이행으로 과태료가 부과돼도 내지 않는 사람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 도내 한 비영리단체는 차고지 증명제가 헌법에 명시된 도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같은 해 제주도 감사위원회도 성과감사팀 신설 후 첫 과제로 차고지 증명제를 선정해 감사를 진행했다. 도 감사위는 지난 5월 차고지 증명제 회피를 위한 위법·편법 행위가 횡행했다는 취지의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내놓은 대안 더 큰 혼란 유발
제주시 연동의 한 공공기관 주차장. 차고지 증명제는 오히려 도민들에게 불편과 부담을 지우면서 정작 실효성은 낮은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되고 있다.

실효성 논란이 지속되자 제주도는 지난해 ‘차고지 증명제 실태조사 및 실효성 확보방안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이후 제주도의회와 협의를 거쳐 적용 대상을 줄이고, 차고지 인정 기준을 완화하는 내용의 최종 개선안을 발표했다.

차고지증명 대상을 기존 전 차종에서 경·소형 차량과 1t 이하 화물차를 제외하는 것으로 변경했다. 전기차와 수소차 등 제1종 저공해차량과 중형자동차 중 배기량 1600cc 미만 차량도 제외했다. 다자녀,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중증장애인 가구에 대해서도 가구당 1대에 한해 차고지 증명을 면제했다. 이에 따라 전체 차고지증명 대상 차량 37만대 가운데 26만대가 제외되면서 중·대형 차량 11만대만 적용 대상으로 남게 됐다.

차고지 확보 기준도 완화했다. 기존 1㎞에서 2㎞ 이내로 거주지와 거리 기준을 대폭 늘렸다. 동일한 공영주차장 임대 기간을 당초 2년까지에서 5년으로 확대하고, 유료 공영주차장 차고지 증명 임대료를 도심지역은 연 90만원에서 45만원으로, 읍면지역은 66만원에서 33만원으로 절반으로 낮췄다.

제주도가 내놓은 개선안은 더 큰 논란을 낳았다. 차량의 크기나 친환경성을 기준으로 면제 대상을 선정한 것이 주차난 해소라는 정책의 본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왔다. 거주지와 차고지 간 거리를 2㎞로 넓힌 방안도 실효성 논란에 불을 지폈다. 차고지 확보는 쉬워졌지만, 2㎞ 떨어진 주차장을 일상적으로 이용한다는 사실이 상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택 내부에 차고지 마련을 하기 힘든 구도심 지역에 대해서는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도민사회에서는 제주도가 정책 폐지의 부담을 지지 않기 위해 미봉책을 내놓고 제도를 지속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제주에서 운행되는 자동차 등록 대수는 2021년 40만2703대에서 올해 7월 41만3655대로 2.7%(1만952대) 늘었다. 같은 기간 주민등록인구가 69만7476명에서 69만3888명으로 0.5%(3588명)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차고지 증명제로 인한 차량 감소 효과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청 누리집에는 답답함을 호소하는 글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시 조천읍 신촌리로 이주를 준비 중이라는 한 작성자는 “이사할 집 주변에 주차 공간이 많은데, 2㎞ 이내에 차고지를 빌릴 시설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썼다. 이어 “제주도민이 되기 위해서는 경차를 사거나, 다자녀가정이거나, 차고지 증명이 되는 아파트를 구매해야 하는 것”이냐며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제주도 관계자는 20일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인이 차고지를 최대한 확보해야 주차난을 덜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다만 지난해 모 단체가 청구한 헌법소원 심판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향후 자기차고지를 마련한 사람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의 정책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