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삶이 진짜 K콘텐츠감”

입력 2025-08-20 03:04
론 무어 박사가 18일 서울 숭실대에서 열린 조부 스탠리 마틴 선교사 전기 출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숭실대 한국기독교 문화연구원 제공

“제 할아버지의 삶은 K드라마로 제작될 만한 굉장한 이야기입니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팬으로서 제안합니다. 한국 감독님들, 여기 당신을 위한 진짜 이야기가 있습니다.”

캐나다장로회 스탠리 마틴(1890~1941) 의료 선교사의 외손자 론 무어 박사는 18일 서울 동작구 숭실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머니의 소원이었던 ‘진짜 이야기’를 한국에 직접 전하러 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가 소개한 책은 할아버지의 삶을 담은 전기 ‘만주의 마틴: 폭풍 속의 횃불’로, 다음 달 말 국내 첫 출간을 앞두고 있다. 연극 연출가였던 어머니 마거릿 마틴 무어 여사는 2015년 이 책을 집필해 발간하고 3년 뒤 세상을 떠났다.

마틴 선교사는 만주 용정에서 제창병원을 설립해 독립운동가를 지원한 공로로 1968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다. 론 무어 박사는 할아버지가 현지 조선인들 삶에 녹아든 일화를 소개하며 “만주에서 할아버지는 중국 경찰에 맞아 죽어가던 강도 한 명을 치료해주고 풀어줬다”고 말했다. 이어 “몇 주 후, 수십 명의 무장 조직폭력배가 병원을 습격하러 왔다”며 “조폭 무리에서 한 남자가 뛰쳐 나와 두목에게 ‘저 의사 선생님이 내 목숨을 구해준 분입니다’라고 귓속말을 하고 사태가 해결됐다”고 전했다.

마틴(왼쪽) 선교사의 진료 모습. 숭실대 한국기독교 문화연구원 제공

1920년 간도참변 당시 학살 현장에 나가 사진을 찍고 국제사회에 알린 조부의 용기 또한 책에 생생하게 담겨 있다. 론 무어 박사는 “의사로서 안전한 병원에만 머물 수도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는 학살 현장으로 직접 나가셨다”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따라 타인을 위해 헌신한 조부의 삶에서 가족으로서의 자부심을 넘어 기독교인으로서의 깊은 영감을 받는다”고 말했다.

론 무어 박사에게 한국은 할아버지의 선교지이기에 앞서 13년간 살았던 곳이다. 아버지 제임스 무어 선교사는 할리우드 종교영화 상영을 위해 발전기를 싣고 전기가 없는 시골 마을을 찾아다녔다. 론 무어 박사는 “생전 처음 영화를 본 수천명의 주민이 스크린 속 예수님이 한국말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놀라워했다”고 전했다. 어머니 마거릿 여사는 극단 ‘가교’를 창단해 예수의 생애를 다룬 그림자 연극 ‘평화의 왕자’를 제작해 전국 교도소와 군부대를 순회공연했다.

방한을 계기로 마틴 가문은 책 집필을 위해 수집한 귀중본 사료를 숭실대에 기증하기로 했다. 프랜시스 킨슬러(권세열) 선교사의 후손인 권요한 서울여대 영문학과 교수는 “선교사 후손들이 3·4세대로 넘어가면서 가족의 역사가 담긴 귀중한 자료들이 잊히거나 버려질 위험에 처해 있다”며 “지금이 흩어진 역사의 조각을 모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숭실대 한국기독교문화연구원은 선교사 후손들에게 기증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기독교자료센터를 설립해 디지털 아카이브를 갖춘 글로벌 허브를 만들 예정이다.

글·사진=김용현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