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날 즈음인 1945년 2월 4일. 흑해 연안 크림반도에 있는 휴양 도시 얄타에 연합국 소속 미국, 영국, 소련의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였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 공산당 서기장,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가 그 주인공이다. 전후 세계 질서를 논의한다는 미명하에 모인 이들은 일주일 동안 유럽과 동아시아 영토 분할을 집중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독일과 한반도의 분할 점령이 결정되는 등 전후 질서를 좌우한 역사적 분기점이 됐다. 미국은 당시 일본과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던 소련으로부터 참전을 약속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일제 패망 후 한반도가 38선을 경계로 미·소 양국에 의해 분할 점령되는 비극의 시작점이 됐다. 스탈린은 전쟁 참여를 대가로 1905년 러일 전쟁에서 상실했던 남사할린 등을 요구했고, 당시 소련의 협력이 절실했던 미국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5개월 후인 7월 17일. 독일 브란덴부르크주의 주도인 역사 도시 포츠담에 3개국 수뇌부가 다시 모였다. 당시 회담에는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 스탈린 서기장, 처칠 총리가 참가했다. 8월 2일까지 진행된 이 회담에서는 한반도의 신탁통치안이 논의됐다. 얄타 회담이 전후 질서의 청사진을 그린 회담이었다면, 포츠담 회담은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한 자리였다. 관련 당사국들은 회담에서 철저히 배제돼, 강대국이 약소국의 운명을 동의 없이 재단한 역사적 사례로 남아 있다. 우리에게도 약소국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끼게 한 회담들이다.
80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러시아가 약소국 배려 없는 강대국 정치의 민낯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에 영토를 양보하라는 식이다. 얄타의 냄새가 난다는 비판이 일고 있는 이유다. 노벨평화상 수상에 집착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압적 중재 외교가 결국 장기적 갈등과 대립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강대국들의 담합에 휘둘리는 우크라이나의 처지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어서 씁쓸하다.
김준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