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바다 건너 렌틸콩이 닿기를

입력 2025-08-20 00:33

재앙 수준의 기아에 직면한
가자지구 주민들… 안타까움
대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면

렌틸콩이라는 작물이 있다. 기원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오래전 고대 근동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처음 재배된 것으로 추정된다. 거대한 사막과 고원의 복판에 자리한 이 지역에는 장대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는 기름진 토양이 있었고, 고대인들은 야생의 식물을 길들여 작물로 삼는 인류 최초의 농업 실험을 진행했다. 그들이 재배에 성공했던 렌틸콩은 완두콩과 병아리콩, 보리 등과 함께 농업의 시초를 이룬 중요한 고대 곡물이다.

성서에도 이 렌틸콩이 곳곳에 등장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가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라크, 레바논, 시리아, 쿠웨이트, 튀르키예, 이란 등에 걸쳐있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창세기에는 허기진 에서가 팥죽 한 그릇을 받고 장자권을 동생 야곱에게 팔아넘겼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등장하는 ‘팥’은 사실 렌틸콩을 의역한 것이다. 껍질을 벗기지 않은 상태에서는 진한 갈색 알갱이를 지니고, 완전히 도정하면 진한 주황색 속살을 드러내는 렌틸콩은 팥과 조금 닮았다.

어쨌거나 이후 렌틸콩은 유럽과 지중해 연안, 아프리카, 서남아시아, 남아메리카까지 퍼져나갔다. 척박한 토양에서도 잘 자라고, 건조된 상태로 유통돼 장기 보관이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여러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의 독특한 향신료를 섞어서 렌틸콩을 요리해 먹었다.

스물 몇 살 때 이주노동자들의 농성 현장에서 함께 둘러앉아 렌틸콩을 먹었던 적이 있다. 강렬하고 낯선 향이 났지만 날이 추웠던 탓인지 너무나 맛있었고, 요리의 이름을 묻는 내게 국자를 쥔 갈색 얼굴의 사내는 웃으며 ‘달 타드카(Dal Tadka)’라고 대답했다. 몇 년 후에도 계속 생각나 동대문 근처 파키스탄과 인도, 방글라데시 식당을 뒤졌지만 아쉽게도 그때의 달 타드카와는 달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향신료를 배합하는 방식만도 수백 가지나 된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프랑스에서 공부했던 친구가 우유와 베이컨, 양파를 넣고 렌틸콩 수프를 끓여주었던 적도 있다. 소박하고 다정한 맛이었다.

요즘 한국에서도 렌틸콩이 인기가 좋다. 맛보다는 효능 때문이다. 유명 가수가 렌틸콩 다이어트에 성공했고, ‘저속노화’를 위한 슈퍼 푸드로 각광받는다. 지방과 당질이 적은 데다 천천히 소화되고 혈당을 급격하게 높이지 않아 식욕 조절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포털의 뉴스 사이트에 렌틸콩이라는 검색어를 넣으면 수많은 기사와 레시피, 건강 상품 출시 소식이 끝없이 출력될 정도다.

하지만 그 기사들 중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기도 한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이야기다. 유엔 산하 통합식량안보단계(IPC)에 따르면 가자지구 주민 대다수는 이미 최악의 단계인 ‘재앙(Catastrophe)’ 수준의 기아에 직면해 있다. 유엔아동기금(유니세프)은 가자지구 북부의 5세 미만 아동 3명 중 1명이 이미 급성 영양실조 상태라고 보고했다. 이는 성장이 멈추고 면역체계가 붕괴해 평범한 감기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고, 살아 남더라도 뇌 발달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는 치명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몇 주째 렌틸콩 조금밖에 먹지 못했다는 가자지구 주민들의 인터뷰와 렌틸콩 한 줌을 더 얻기 위해 그릇을 내밀며 울부짖는 아이들 사진을 보고 있으면 슈퍼 푸드나 저속노화가 대체 무엇인가 싶다. 지방과 당질이 적고 소화가 느리다는 렌틸콩의 특징은 뱃살을 걱정하는 우리들에게는 축복이지만 최소한의 열량을 기다리는 이들에겐 한없는 아쉬움일 것이다.

이집트와 튀르키예에 사는 사람들은 답답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렌틸콩과 쌀, 콩을 담은 플라스틱 병을 지중해에 던진다고 한다. 그 병이 굶주리는 아이들 손에 닿기를 바라면서. 그 연대의 마음들이 파도를 뚫고 무사히 바다를 건너면 좋겠다. 전전긍긍하는 것 말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날은 거울을 보기도 싫어진다.

김현호
사진비평가
보스토크 프레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