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임의 포도원 진노란 꽃잎이
바람에 실려 날아갈 때 들려온
당신의 발자국 소리
게달의 장막처럼 검게 그을린 얼굴
차마 보일 수 없어 숨었지요
비천한 소작농의 딸이
어찌 제왕의 여인이 될 수 있겠어요
그러나 노루처럼 사슴처럼 달려와
꼭꼭 치닫는 문틈 사이로 훔쳐보며
끝까지 기다려 주신 당신
어느 날 사과나무 아래 지쳐 잠들었을 때
나의 볼에 닿던 부드러운 입맞춤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던
죽음보다 강한 사랑
어디선가
홀로 사랑을 기다리는 이여
지금 사과나무 아래로 달려가 보세요.
소강석 시인, 새에덴교회 목사
술람미는 솔로몬이 사랑한 여인이다. 성경의 아가서에 나오는 여성으로, 그 정체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으나 대체로 수넴 여인 아비삭이라는 주장이 우세하다. 70인역 번역에서는 술람미가 수넴을 지칭한다고 한다. 비천한 소작농의 딸로서 제왕의 사랑을 받기 어려워 숨었지만, 솔로몬은 노루처럼 사슴처럼 달려와 끝까지 기다려 사랑을 성취했다. 시인은 이 사랑의 문법과 관련해 술람미 여인의 입을 빌어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었다고 확정적으로 말한다. 그리고 홀로 사랑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이들이 입맞춤을 한 사과나무 아래로 달려가 보라고 권유한다. 여기서 시인이 아직 다 말하지 않고 숨겨둔 비밀이 있다면, 이 지극하고 깊은 솔로몬의 사랑이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 사랑의 예표(豫表)라는 언사가 아니었을까. 이 빛나는 장면은 그야말로 세상의 모든 사랑이 닮고 싶은 성공 사례다.
-해설: 김종회 교수(문학평론가, 전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