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공기업 직원 A씨의 하루는 2023년 생성형 인공지능(AI) 서비스 ‘챗GPT’ 활용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주 업무가 물가 전망이었던 A씨는 이전까지 수백 가지 품목의 가격 변동을 일일이 파악하고 관련 정책 변화를 숨가쁘게 따라잡아야 했으나 챗GPT를 활용하면서 수고를 크게 덜었다.
보고서 작성이나 보조적인 코딩 작업에서도 챗GPT는 어지간한 조수 이상의 몫을 해냈다. 그는 지금도 매주 3시간 이상 챗GPT를 업무에 활용한다. 과거와 비교하면 시간 절약 효과가 너무 확연하기 때문이다. A씨는 “AI와 함께라면 주 4.5일제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A씨처럼 일터에서 생성형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는 건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한국은행 조사 결과 국내 근로자의 절반 이상이 이미 챗GPT 등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18일 발표한 ‘AI의 빠른 확산과 생산성 효과’ 보고서에서 지난 5~6월 전국 15~64세 취업자 551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생성형 AI 활용 실태를 공개했다. 조사 결과 국내 근로자의 63.5%가 지금껏 한 차례 이상 생성형 AI를 활용했고, 특히 업무 목적으로 생성형 AI를 활용해본 근로자는 전체의 51.8%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례적으로 빠른 보급 속도다. 51.8%의 업무 활용률은 올해 미국 근로자 대상 조사 결과(26.5%)과 비교해도 2배 가까이 높다. 주요 생성형 AI 서비스가 2022년 하반기에야 국내에 상륙했음을 감안하면 인터넷 도입 첫 3년(7.8%)보다도 확산 속도가 8배 더 빠르다. 보고서는 “이처럼 빠른 확산은 (잘 갖춰진) 기반시설과 AI의 범용성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국내 근로자들의 AI 활용 시간도 더 길다. AI를 업무 용도로 쓰는 국내 근로자들은 평균적으로 주마다 5~7시간을 AI에 투입했다. 주 40시간 근무 기준 전체 업무 시간의 12.1~16.6%에 달한다. 미국 근로자들이 AI에 할애하는 근무 시간은 전체의 1.3~5.4%에 그친 것과 대조된다.
적극적인 AI 활용으로 업무 시간도 단축됐다. 보고서에 따르면 AI를 업무에 활용한 국내 근로자의 주당 업무 시간은 평균 3.8% 감소했다.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 평균 1.5시간을 줄였다. 이는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한은이 추정한 AI의 잠재적 생산성 개선 효과는 2022년 4분기부터 지난 2분기까지 국내총생산(GDP) 기준 1.0% 포인트에 달했다.
다만 활용 시간의 격차에도 불구하고 AI로 인한 업무 시간 감소 효과는 한국보다 미국 근로자(5.4%) 사이에서 오히려 더 크게 나타났다. 아직 국내에서는 AI 활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의 비중이 높았던 탓으로 풀이된다. 국내 근로자 중에는 AI를 업무에 활용하고도 업무 시간이 동일하거나(50.9%) 거꾸로 증가한(3.2%) 비중이 절반을 넘겼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