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연설비서관은 ‘대통령의 심장’으로 불린다. 대통령의 철학과 소신, 심지어 입버릇까지 파악해 자신의 글이 아닌 대통령의 연설을 써야 하는 자리여서다. 대통령의 모든 공식·비공식 일정에 참석하면서도 광복절 경축사 같은 큰 연설 원고를 두고는 대통령에게 혼쭐이 나는 이들이 많았다. 그만큼 대통령도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연설비서관의 원고를 수십번 읽으며 밤새 다듬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은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사의 주요 표현을 고르고 다듬으며 사실상 직접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대통령실 연설비서관이 공석이다. 대신 성남시장 시절부터 메시지를 관리한 김모 행정관이 팀장을 맡아 실무를 총괄하며 지원한다. 메시지팀이 초안을 작성해 보고하면 대통령이 각계 자문을 받아 최종안을 완성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된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이 대통령 연설은 자신의 언어색과 성향이 더 도드라진다는 게 대통령실 설명이다. 경축사에 반복적으로 담긴 ‘빛의 혁명’ ‘국민 주권’ 등의 표현 역시 이 대통령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18일 “경축사에 담긴 ‘빛’ ‘평화’ ‘민주’ 등의 표현은 대통령이 직접 고민해 선택한 단어”라며 “평화 기조와 12·3 비상계엄 이후 국민이 이뤄낸 민주주의 성취에 대한 대통령의 평소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실용적이고 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자신의 성향을 반영해 감성적 호소 대신 비전 제시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정부는 감성적 수사를 최소화하고, 실질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메시지가 강하다”며 “이 대통령은 연설문 마지막 단계에서 문장을 짧고 간결하게 많이 고치는 편”이라고 말했다. 메시지팀에서도 각종 회의에 원고 대신 핵심 메시지와 주요 내용만 간략히 정리해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대통령실에서는 연설비서관이 꼭 필요하느냐는 회의적 시각도 있다. 오랜 기간 이 대통령과 호흡을 맞춘 김 팀장이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있고, 만기친람인 이 대통령 스타일과도 맞는다는 것이다. 반면 여권에선 이 대통령의 즉흥적인 발언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공식적인 발표의 경우 연설비서관이 국민적 눈높이에 맞게 대통령을 설득해 객관적이고 정제된 메시지를 만들어줘야 한다”며 “5년간 모든 메시지를 지금처럼 할 순 없다”고 말했다.
윤예솔 기자 pinetree2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