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도네츠크·루한스크주)을 통째로 양보하라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평화협상 요구안에 대해 우크라이나 내부에서 강한 반발이 터져 나왔다.
17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의회 할냐 얀첸코 무소속 의원은 러시아 측 요구에 대해 “푸틴이 원한다는 이유로 싸우지도 않고 영토를 양보하라는 것”이라며 “애초부터 터무니없다”고 비판했다. 푸틴은 지난 15일 알래스카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에서 우크라이나가 돈바스 지역을 양보하면 종전에 합의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러시아가 아직 점령하지 못한 도네츠크 지역에는 우크라이나 시민 25만5000명이 거주하고 있다. 얀첸코 의원은 “영토 거래는 사실상 사람을 거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도네츠크 출신 한 우크라이나 시민은 가디언에 “러시아가 나머지 도네츠크 지역을 가져간다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패배를 의미한다. 이는 사회 분열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런 문제를 일방적으로 해결할 권한은 없다. 영토 포기는 정치적 자살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키이우 시민은 CNN에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우리는 푸틴을 믿지 않는다”며 “우크라이나는 테러리스트에게 절대 영토를 내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지 언론에서도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우크라인스카야 프라브다 편집장 세브힐 무사이예바는 칼럼에서 “우리는 패배를 인정해야 하는 듯한 행동을 강요받고 있다”며 “군사적 패배가 아닌 정치적 패배야말로 가장 위험한 형태의 패배”라고 썼다.
헌법상 젤렌스키 대통령이 영토 양보를 결정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 더타임스는 “우크라이나 헌법은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영토 변경을 허가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며 “영토 변경은 의회가 소집하는 국민투표를 통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고 전했다. 젤렌스키도 지난 9일 “우크라이나 영토 문제에 대한 답은 우크라이나 헌법에 있다”고 밝혔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