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환경이 열악하고 사역 상황에도 여유가 없는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은 자신을 돌보는 일을 뒤로 미루기 쉽다. 영적 돌봄만큼이나 신체적 돌봄이 절실하지만, 물리적으로 치료를 미루다 병이 악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승일(68) 선교사도 예외가 아니었다. 필리핀 몬탈반에서 30년 넘게 교회와 복지 사역을 이어온 그는 지난해부터 시력이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성경을 읽기 힘들 정도로 글자가 흐려지고, 설교 원고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예배 중 성경 구절을 더듬으며 읽거나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이 잦아졌다. 목회자인 그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최근 인천 부평의 한 안과에서 만난 최 선교사는 “휴대전화 글씨는 최대로 확대해 겨우 볼 정도였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당연히 운전도 쉽지 않았다. 차선이나 표지판이 뿌옇게 보여 잘못 들어섰다가 함께 차에 탄 교인들에게 “눈이 나빠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됐다. 이상이 있다는 건 확실했지만, 치료는 다른 문제였다.
필리핀 현지에서 안과 검진을 받을 병원이 많지 않았을 뿐 아니라 비용 부담도 컸다. 하루 입원에 100만~300만원이 드는 병원비는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다. 현지 의료진의 숙련도는 한국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도 불안 요소였다. 최 선교사는 “비용은 비싸고 시설과 실력은 낙후한 필리핀에서 선교사들이 병원을 이용하긴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행히 지난해 7월 동료 선교사 소개로 웨슬리사회성화실천본부(웨사본·대표 홍성국 목사)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들어와 검진을 받았다. 오른쪽 눈은 이미 백내장이 100% 진행됐고 왼쪽은 굳은살이 배겨 80% 정도만 제거할 수 있다는 게 검진 결과였다. 하지만 수술을 받고 이날 마지막으로 확인한 수술 경과에서 그의 시력은 놀라울 정도로 회복됐다. 최 선교사는 “가까이도 잘 보이고 멀리도 선명하다. 교인들과 다시 마주할 수 있는 게 가장 기쁘다”며 활짝 웃었다.
최 선교사를 도운 웨사본은 2016년 출범한 기독교대한감리회 총회 인준 기관이자 초교파 비영리 단체다. 해외 사역자와 선교사를 위한 숙소 차량 생활편의 지원 등 플랫폼사업에 집중해 온 웨사본은 2023년부터 본격적으로 의료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협력 병원과 연계해 무료 안과 검진과 백내장 수술을 지원한다.
해외 선교사뿐 아니라 국내 사역자도 돌봄 대상이다. 경기도 연천에서 발달장애인 가족을 돌보는 이철제(60) 목사는 20대부터 안과 수술과 시술을 반복해 왔다. 한쪽 눈은 이미 시력을 잃었고, 다른 한쪽도 백내장으로 심각한 불편을 겪어 왔다. 어려운 사역을 이어온 그에게 수술 비용은 역시나 큰 장벽이었다. 그 역시 웨사본을 통해 무료로 진단을 받고 수술을 진행할 수 있었다. 꿈마을엘림교회(김영대 목사)가 창립 50주년 희년 기념사업으로 후원했다. 이 목사는 “다시 운전대를 잡고 장애인 가정을 찾아갈 수 있다는 게 기대된다”면서 “사역자 돌봄은 단순한 치료를 넘어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웨사본을 통해 안과 검진을 받은 사역자는 지금까지 약 300명, 이 중 30여명이 수술을 받고 시력을 회복했다. 이런 의료지원 사업의 시작은 우연에 가까웠다. 필리핀에서 선교하던 한 여성 선교사가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귀국이 늦어지던 중 백내장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게 됐다. 수술비가 부족해 신용카드로 할부 결제를 알아보던 상황이 알려지면서 서울 서대문구의 아현감리교회(김형래 목사)가 금식헌금을 전달하고 웨사본이 수술을 연계해준 것이 첫 지원이었다. 이후 인천 하늘꿈교회, 부천 성산교회 등 지역 교회들이 창립기념일 헌금을 모아 후원에 동참하면서 웨사본의 제도적 지원이 자리를 잡았다.
웨사본 상임대표 조정진 목사는 “선교사 지원은 단순한 의료 혜택을 넘어 사역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장치”라며 “각 교회에 맡겨진 그간의 지원을 연합과 공동 플랫폼을 통해 함께 지켜내는 구조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웨사본의 대표적인 사업은 선교관 운영이다. 2017년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에 방 한 칸으로 시작해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확장, 현재 45채까지 늘어났다. 귀국한 선교사들은 이곳에서 단·장기로 체류하며 안정적으로 휴식과 회복의 시간을 보낸다. 1인실, 부부실, 가족실로 구분돼 있어 상황에 맞게 이용할 수 있다. 체류 기간 최소 비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차량도 30여대 준비돼 있다.
선교사 자녀(MK)를 위한 학사관, 이른바 ‘MK의 집’도 있다. 장기 임대 계약이 어려운 선교사 자녀들이 저렴한 가격에 하루 단위로 쓸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 학사관 수요가 급증했을 때 선교사 가족들이 안심하고 자녀를 맡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조 목사는 “선교사 돌봄은 단순히 생활 편의를 제공하는 게 아니다. 전방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후방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을 갖추는 일”이라면서 “숙소·차량·의료·학사관 같은 지원을 더 체계화해 사역자들이 현장에서 안심하고 헌신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글·사진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