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목회하며 그린 서툰 작품엔 하나님 사랑이…

입력 2025-08-19 03:02 수정 2025-08-19 08:39
허승우 독일 뉘른베르크-에얼랑엔 한인교회 목사가 최근 서울 마포구의 갤러리 앤솔로지아에서 자신의 묵상 그림 앞에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독일 작은 한인교회에서 20년 이상 목회해 온 65세 목사가 그린 조금은 서툴고 투박한 그림들이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미술 전문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민 목회 중 외로움을 달래며 묵상 그림을 그려온 허승우 뉘른베르크-에얼랑엔 한인교회 담임목사의 작품이다. SNS에서 그의 그림을 접한 김을란(79) 서교동교회 권사가 제안하며 이번 전시가 성사됐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갤러리 앤솔로지아에서 최근 만난 허 목사는 “16년 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려는 계획으로 온 고국에서 전시회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며 감격을 표했다. 김 권사는 “전시를 연결하면서 말씀엔 운동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웃었다. 김 권사는 앤솔로지아 조영진 대표의 모친이다.
허승우 목사의 개인전 모습. 앤솔로지아 제공
허승우 목사의 개인전 모습. 앤솔로지아 제공
전시회장에는 허 목사와 함께 한국을 방문한 가족,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 수십 명이 자리했다. 이들은 짧게 예배를 드리며 함께 두 손을 모으기도 했다. 허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그린 밀알 같은 말씀의 형상으로 이런 전시회를 연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허 목사는 짐가방에 그림을 담아 한국에 오면서도 “아마추어의 그림으로 무슨 전시회를 하겠냐”는 마음이 가득했다고 했다. 그러나 모친을 통해 허 목사의 그림을 접한 조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조 대표는 “여행용 가방과 배낭에 직접 담아온 허 목사님의 그림 2000여점엔 성도에 대한 사랑과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쑥스럽다면서 전시를 거절하는 목사님께 ‘이건 개인전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생각해 달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허승우 목사가 다양한 앨범에 담아 그림을 한국에 가져온 모습. 앤솔로지아 제공
조 대표는 앤솔로지아 2층 전시 공간의 첫 초대전을 허 목사의 작품으로 꾸몄다. 엽서 사이즈의 사진 인화지에 사인펜으로 그린 묵상에는 성경 구절에 맞춰 떠오른 단순하고 명료한 그림이 담겨 있다.

허승우 목사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해 그린 그림들. 허 목사 제공
허승우 목사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해 그린 그림들. 허 목사 제공
허승우 목사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해 그린 그림들. 허 목사 제공

허 목사는 2018년 심장병을 진단받고 독일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고 나서부터 그림을 그렸다. 회복 후 설교를 준비하며 성경 구절에 맞춰 떠오르는 이미지를 못 쓰는 종이에 끄적인 게 시작이었다. 아내 등 가족과 성도 150여명이 그의 그림을 보면서 말씀을 더 가까이하게 됐고 무엇보다 행복해했다. 허 목사는 사순절 등 절기의 본문을 그림으로 표현해 예배에 활용하기도 했다.

허 목사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림을 그렸다.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의 홍남기 선교사로부터 현지 청소년의 편지 17편을 전달 받으면서다. 그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은 종이를 채웠다.
우크라이나 현지 교회에 띄워진 허승우 목사의 그림들. 허 목사 제공
우크라이나 현지 교회에 띄워진 허승우 목사의 그림들. 허 목사 제공

“어두운 밤 속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았고, 처음엔 천둥인 줄 알았다” “제가 알던 세상이 곧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등의 사연에 허 목사는 따스한 하나님의 품과 평안을 담아 답하려 했다. 이듬해 봄 이메일로 전해진 그림은 현지 교회에서 화면으로 띄워져 전시되기도 했다. 허 목사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머무는 홍 선교사 부부를 이번 전시회에서 만났다.
허승우 목사와 아내, 그리고 가족들. 허 목사 제공

허 목사는 지난 11일 시작된 ‘은총의 메아리-윤슬’ 개인전을 오는 30일까지 진행하고 다음 날 독일로 돌아간다. 꿈만 같던 전시를 통해 많은 인연을 만났다. 한국에서 부목사로 일하다 1996년 독일 유학을 떠날 때 비행기 삯을 대주던 대학 선배도 30년 만에 재회했다. 허 목사는 “목회자는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제가 정말 큰 사랑과 위로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다시금 알게 됐다”며 “서툰 솜씨로 완성된 그림을 통해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승우 목사의 묵상 그림 작품. 앤솔로지아 제공

글·사진=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