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작은 한인교회에서 20년 이상 목회해 온 65세 목사가 그린 조금은 서툴고 투박한 그림들이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 미술 전문 갤러리에서 전시되고 있다. 이민 목회 중 외로움을 달래며 묵상 그림을 그려온 허승우 뉘른베르크-에얼랑엔 한인교회 담임목사의 작품이다. SNS에서 그의 그림을 접한 김을란(79) 서교동교회 권사가 제안하며 이번 전시가 성사됐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갤러리 앤솔로지아에서 최근 만난 허 목사는 “16년 만에 반가운 얼굴을 보려는 계획으로 온 고국에서 전시회라는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며 감격을 표했다. 김 권사는 “전시를 연결하면서 말씀엔 운동력이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웃었다. 김 권사는 앤솔로지아 조영진 대표의 모친이다.
허 목사는 짐가방에 그림을 담아 한국에 오면서도 “아마추어의 그림으로 무슨 전시회를 하겠냐”는 마음이 가득했다고 했다. 그러나 모친을 통해 허 목사의 그림을 접한 조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조 대표는 “여행용 가방과 배낭에 직접 담아온 허 목사님의 그림 2000여점엔 성도에 대한 사랑과 기독교인이 가져야 할 하나님을 향한 순수한 아름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쑥스럽다면서 전시를 거절하는 목사님께 ‘이건 개인전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고 생각해 달라’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허 목사는 2018년 심장병을 진단받고 독일병원에서 긴급 수술을 받고 나서부터 그림을 그렸다. 회복 후 설교를 준비하며 성경 구절에 맞춰 떠오르는 이미지를 못 쓰는 종이에 끄적인 게 시작이었다. 아내 등 가족과 성도 150여명이 그의 그림을 보면서 말씀을 더 가까이하게 됐고 무엇보다 행복해했다. 허 목사는 사순절 등 절기의 본문을 그림으로 표현해 예배에 활용하기도 했다.
허 목사는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림을 그렸다. 지난해 말 우크라이나의 홍남기 선교사로부터 현지 청소년의 편지 17편을 전달 받으면서다. 그는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은 종이를 채웠다.
“어두운 밤 속에서 번쩍이는 빛을 보았고, 처음엔 천둥인 줄 알았다” “제가 알던 세상이 곧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등의 사연에 허 목사는 따스한 하나님의 품과 평안을 담아 답하려 했다. 이듬해 봄 이메일로 전해진 그림은 현지 교회에서 화면으로 띄워져 전시되기도 했다. 허 목사는 우크라이나로 돌아가지 못하고 한국에 머무는 홍 선교사 부부를 이번 전시회에서 만났다.
허 목사는 지난 11일 시작된 ‘은총의 메아리-윤슬’ 개인전을 오는 30일까지 진행하고 다음 날 독일로 돌아간다. 꿈만 같던 전시를 통해 많은 인연을 만났다. 한국에서 부목사로 일하다 1996년 독일 유학을 떠날 때 비행기 삯을 대주던 대학 선배도 30년 만에 재회했다. 허 목사는 “목회자는 사랑을 흘려보내는 자리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제가 정말 큰 사랑과 위로를 받고 있었다는 것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 다시금 알게 됐다”며 “서툰 솜씨로 완성된 그림을 통해 누군가가 하나님의 사랑을 바라볼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신은정 기자 se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