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재 목사의 후한 선물] 거의 합격은 없습니다

입력 2025-08-19 00:30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거의 붙을 뻔했는데”라는 탄식을 듣게 된다. “조금만 더 했으면 됐는데” 하는 아쉬움도 오래 남는다. 하지만 인생에서 시험은 떨어지더라도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그러나 ‘천국 시험’은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끝이다. 우리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모든 시험엔 공통점이 있다. 합격 아니면 불합격이다. ‘거의 합격’은 없다.

창세기 마지막 부분을 보면 요셉의 형들이 일련의 시험을 치른다. 그들이 노예로 판 동생과 관계 회복을 위한 시험이다. 마지막 시험인 은잔 도난 사건에서 그들은 거의 합격자에 머물 뻔했다. 막내 베냐민이 은잔 도둑으로 몰리자 그들은 억울하다며 변명만 늘어놓은 것이다. 유다는 형제를 대표해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라고 하소연한다. 22년 전 동생을 팔고 아버지를 속인 그들이 스스로 정직하다고 착각하는 모습이다.

‘보이지 않는 고릴라’ 실험이 있다. 농구 경기 중 고릴라 의상을 입은 사람을 지나가게 하고 그 영상을 찍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 영상을 보여주며 농구공 패스 횟수를 세라고 했다. 그랬더니 화면을 가로지르는 고릴라를 못 본 참가자가 무려 절반에 달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고릴라를 못 봤다는 사실 자체를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가 어떻게 이걸 못 볼 수 있느냐”는 자기 확신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거의 아는 척, 거의 정직한 척할 때가 많다. 하지만 ‘거의’는 합격이 아니다.

유다는 처음엔 자기 착각 속에서 정직함을 내세우며 방어했다.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린다. 자신들의 짐에서 은잔이 나오면 책임지기로 하고서 회피하려는 모습이 부끄러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22년 전 동생 요셉을 노예로 팔고 아버지를 속인, 자신의 정직하지 못한 죄가 떠올랐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는 자신이 억울한 일을 당하자 과거 자신이 억울하게 했던 요셉이 생각났을 것이다.

그래서 유다는 다시 형제를 대표해 자기 확신을 뛰어넘는 발언을 한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창 44:16) 이것은 아무리 억울한 사건도 자신의 죄악보다 무겁지 않다는 고백이다. 자신의 죄를 아무리 감추려 해도 하나님을 속일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게다가 유다는 심문하는 애굽 총리에게 사정을 진실하게 설명하며 베냐민의 죗값을 자신이 대신 치르겠다고 요청한다. “이제 주의 종으로 그 아이를 대신하여 머물러 있어 내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창 44:33) 말이 아닌 행동으로 책임지는 사랑을 선택한 것이다. 유다의 이러한 죄 고백과 적용은 요셉 형제들이 마지막 시험에 합격하는 열쇠가 됐다.

한 어머니의 간증이다. 그의 딸이 성형 수술을 하겠다며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 그는 “왜 멀쩡한 얼굴을 고치려 하느냐”며 한마디로 거절했다. 그러자 딸은 스스로 자금을 마련하려다 부지중 보이스피싱 조직에 연루돼 구속됐다. 그 소식을 듣는 순간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10년 전 보이스피싱을 당해 큰돈을 잃어 가해자들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었는데 지금 자기 딸이 가해자가 된 기막힌 사실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건을 통해 그의 숨겨진 죄를 찾아내셨다. 재혼한 남편과 시댁의 인정을 받기 위해 우상 삼느라 몸과 마음이 아픈 딸을 내버려 뒀던 죄를 깨닫고 회개했다. 그는 법정에서 “자식을 잘못 키운 어미를 벌하시고 딸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통곡하며 호소했다. 딸은 집행유예를 받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그를 낮추셔서 평생 은혜로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자리에 두셨다. 인생의 최종 합격을 보장해 주신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시험은 억울한 사건과 여러 고난으로 계속 찾아온다. 그러나 그때마다 이 시험이 나의 숨겨진 죄를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임을 기억하면 좋겠다. 천국 시험에도 거의 합격은 없다. 끝까지 죄를 고백하고 책임지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진짜 합격이다.

김양재 우리들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