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계엄 위자료

입력 2025-08-19 00:40

정치적 사건을 둘러싼 손해배상 위자료 소송이 본격화된 것은 민주화 이후 국가폭력 피해 보상 과정에서였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의 불법 진압으로 희생된 시민과 유가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를 청구한 것이 대표적이다. 4·19혁명, 인혁당 사건, 부마항쟁 피해자들도 소송을 제기해 일부 배상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들 사건은 어디까지나 직접 피해자가 주체였지, 국민 전체가 정치적 불법행위로 인한 정신적 피해를 청구한 것은 아니었다.

헌정질서 침해를 이유로 한 집단 위자료 소송의 역사는 길지 않다. 국정 농단·사법 농단·선거개입 같은 정치적 사건에 대해 국민이 위자료 소송을 낸 적은 있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외에서도 사례는 드물다. 불법 구금, 고문, 학살, 차별 등 직접 피해에 대해서만 위자료가 인정될 뿐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한 계엄 위자료 판결은 주목할 만하다.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인 판례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5일 서울중앙지법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불법행위로 인정하고 시민 104명에게 1인당 10만원씩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법원이 비상계엄으로 인한 시민들의 정신적 피해와 손해배상 청구권을 명시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다. 이후 유사 소송이 전국적으로 잇따르고 있다.

급기야 18일에는 윤 전 대통령뿐 아니라 김건희 여사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됐다. 김경호 변호사는 시민 1만2225명을 대리해 이들 부부를 상대로 각 10만원의 위자료를 청구하는 소장을 제출했다. 그는 “김 여사가 실질적인 공동 불법행위자로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배우자에게까지 법적 책임을 묻는 선례가 만들어진다면 파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불법 계엄, 전직 대통령 부부의 구속, 이어지는 대규모 위자료 소송까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 한국 현대사에 기록되고 있다. 불행하고도 부끄러운 현실이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