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조선학교 주방에서 엄마들과 급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유치부의 4살 아이가 자신의 엄마를 보러 왔다가 나를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다레노(누구) 엄마?”
조선학교 아이들이 잘 쓰는 언어 중 하나다. 한국교회 선교팀을 데리고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다레노 할배? 다레노 아빠?”라고 묻는다. 아직 어린아이들은 우리말이 서툴다 보니 이처럼 일본어와 조선말을 섞어서 말한다.
그 아이는 다음에 만났을 때 내게 다가와 반갑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다. 시간이 흐른 후 이 아이는 내게 그냥 달려와서 안겼다. 그 아이가 어느새 초등학교 6학년이 됐다. 그는 세례를 받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지만, 현재 내 곁에는 없다.
하나님은 처음에 우리 부부 곁에 두셨다가, 그 사람의 영적 상황이 무르익으면 그 열매를 잘 지킬 수 있는 다른 사역자에게 보내시곤 했다. 참으로 역설적인 방법이었다.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께 서운해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설명 없으신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법이었다. 조선학교 선생님들은 우리 부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 분은 하나님밖에 없잖습니까. 그러니 문제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부부를 믿는다는 표현이다. 그러면서 “어떻게 목사(선교사) 부부가 조선학교 사역을 하느냐”고 물었다. 선생님들은 믿음으로 물어본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게 그 답을 알도록 해주셨다. 다른 어떤 것이 아닌 복음으로 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러니 보이는 것에 집중하다 하나님을 놓치지 말라고.
조선학교 아이들, 그리고 그들의 부모와 함께 한국 여행을 해 왔다. 처음엔 한 아이와 엄마 가정으로 시작했는데 다음은 28명, 그다음엔 70명이 함께 한국 여행을 했다. 한 번은 여행 중에 한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다. 병원에선 그 아이의 신분을 알려줄 만한 것을 보여달라고 했다. 한국 것이 없다고 했더니 일본 것이라도 보여 달라고 했다. 그것도 없다고 하니 “그럼 이 아이는 누구냐”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재일조선인은 한국영사관이 발급한 여행증명서로 한국 여행을 한다. 국적이 없기에 여권번호로 신분 확인이 되지 않는다.
나도, 우리도 모두 이 아이일 수 있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눅 19:5) 나는 이렇게 부르시는 예수님의 온유함이 참 좋다. 조선인들이 삭개오처럼 뽕나무에 올라가면 우리도 이들을 온유하게 불러주면 좋겠다.
한국에서 재일조선인 이야기를 하면 “선교사님 아무리 그렇게 노력해도 그들은 변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그들은 변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나도 고집과 습관, 생각 등의 모든 것이 어지간히 변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내게 주고 싶으셨던 것은 무엇일까. 예수님의 생명이 나를 통해 흐르는 것. 그러기에 오늘도 십자가 앞에 나를 드린다. 이런 나일지라도 예수님처럼 어떠한 사람이라도 어떠한 상황일지라도 모든 사람과 공감하고 너그럽게 사랑하고 싶다. 이것은 기적이다. 그리고 나는 그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심을 고백한다.(고전 3:6~7)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