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 거목 소설가 박경리 선생은 2008년 4월 뇌경색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당시 그는 고혈압과 당뇨병을 앓으며 왼쪽 시력 저하를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전년도에 폐암 진단을 받았으나 고령 등의 이유로 수술이나 항암치료는 받지 않은 채 치료를 이어갔다. 그해 5월 향년 82세로 별세한 선생의 사인은 폐암이었지만 말기엔 뇌경색으로 인한 신경학적 후유증도 함께 진행됐다.
뇌경색은 흔히 갑작스러운 쓰러짐으로 발병을 인지한다. 실제로는 그 이면에 고혈압과 당뇨병, 심장 질환 등이 오랜 시간에 걸쳐 몸을 침식한 과정이 있다.
뇌졸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뇌경색은 뇌혈관이 막히면서 뇌 조직이 괴사하는 질환이다. 뇌경색의 원인은 결코 갑작스럽지 않다. 오랜 당뇨병은 혈관 내벽을 서서히 손상시키고 혈액을 끈적하게 만들며 뇌혈관의 좁아짐이나 막힘을 초래한다. 고혈압은 이 상태에 압력을 더하고 혈관 벽을 약화해 위험을 가중시킨다. 부정맥, 특히 심방세동은 심장의 박동이 불규칙해져 혈류가 정체되고 이로 인해 형성된 혈전이 뇌혈관을 막는 심인성 뇌경색을 일으킬 수 있다.
오늘날 의학은 점점 더 예측의학으로 중심축을 이동하고 있다. 예측의학은 병이 발생하기 전 상태를 포착해 위험을 사전 차단하는 의학적 접근이다. 혈당 수치나 혈압 수치만으로 병의 진행을 판단하는 시대는 지났다. 당화혈색소와 인슐린 저항성 같은 대사 지표를 함께 분석해 경동맥 초음파로 미세한 혈관 변화까지 조기에 찾아낼 수 있다. 동맥 탄성도를 측정해 혈관 노화 속도를 정량화할 수 있고, 정기적인 맥박 모니터링이나 스마트워치 기반의 심전도 모니터링으로 부정맥 징후를 조기에 발견할 수 있다. 심방세동이 감지되면 CHA₂DS₂-VASc 점수와 같은 임상 예측 도구로 뇌졸중 위험을 정량화한다. 고위험군은 항응고 치료나 시술로 진행을 막을 수 있다.
과거엔 손발이 저리거나 눈이 침침해지고 어지럼증이 있으면 나이 탓이라며 넘겼다. 그러나 예측의학은 이런 사소한 변화가 병의 시작일 수 있다는 경고를 던진다. 혈관은 아프지 않기에 더 위험하다. 침묵하는 신체를 대신해 말해주는 것이 데이터이고, 이를 읽어내는 게 예측의학의 본질이다.
병은 어느 날 갑자기 오는 게 아니다. 우리 몸은 이미 수없이 경고하고 있다. 그 조용한 신호에 귀 기울이는 것, 이것이 앞으로의 건강을 결정한다.
이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몸에 대해 관심을 두는 것이다. 평소 혈압이 어느 정도인지, 공복 혈당이나 당화혈색소 수치가 정상인지, 최근 1~2년간 체중의 급변이 있었는지를 인지해야 한다. 6개월 혹은 1년 단위로 경동맥 초음파와 심전도, 혈관 탄성도 검사를 받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혈액검사로 염증 수치나 지질 수치를 정기적으로 확인하고 이상이 감지되면 의료진과 상의해 조기 개입할 수 있다.
스마트워치나 심박센서가 탑재된 기기를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걸음 수나 수면시간과 함께 불규칙 맥박 경고, 심박 수 변화, 심박변이도 등을 확인하는 습관을 들이면 좋다. 부정맥은 자각 증상이 전혀 없을 수 있기에 주기적으로 의료기관에서 24시간 심전도 검사를 받거나 이상이 의심되면 병원을 방문해야 한다. 피곤함과 가슴 두근거림, 식은땀과 호흡곤란 같은 모호한 증상도 부정맥 초기 신호일 수 있다.
생활습관도 예측의학의 기반이 된다. 당뇨병과 고혈압 위험군에 속한다면 섬유질과 단백질 위주의 균형 잡힌 식사를 유지해야 한다. 식사할 때 혈당을 천천히 올릴 수 있도록 식사 순서를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다. 유산소 운동과 스트레칭은 혈관 탄성을 높이고 심장 리듬을 안정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생활 전반의 리듬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불규칙한 수면과 식사, 과로 및 만성 스트레스는 신체 항상성을 깨뜨리며 만성질환을 악화시킨다.
삶을 지키는 또 하나의 힘은 바로 예측하고 준비하는 태도다. 예측은 오직 준비된 자의 눈에만 보인다. 그 준비는 지금, 작고 반복되는 실천에서 시작된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