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암은 남녀 모두에서 흔히 발생하지만 성별에 따라 질환의 양상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여성에서는 오른쪽(상행·횡행 결장 등) 대장암 비율이 절반을 넘고 편평한 톱니 모양의 선종(암 전 단계)에서 진행돼 조기 진단이 어려운 편이다. 반면 남성은 왼쪽(하행 결장, 직장 등) 대장암 비율이 높고 관 모양 선종에서 시작하며 발병 시기도 평균 5~7년 빠르다.
최근 이처럼 성별에 따른 질병 차이 등을 연구하는 ‘성차 의학’이 주목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대장암 발생의 남녀 차이에 실마리가 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여성의 오른쪽 대장암에서 암세포가 면역을 회피하는 유전자가 강하게 활성화되는 현상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다.
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팀은 대장암 환자 378명의 대장 조직을 바탕으로 성별과 발생 위치에 따라 암이 어떻게 발생해 면역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지 유전자 수준에서 비교·관찰했다.
그 결과 여성의 오른쪽 대장암 환자군에서 항산화와 관련된 ‘NRF2’ 유전자와 면역 관문 단백질 ‘PD-L1’의 발현이 가장 크게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NRF2 유전자는 세포 손상을 일으키는 ‘산화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생존을 돕는 역할을 한다. PD-L1 단백질은 면역세포의 공격을 억제한다.
즉 여성 오른쪽 대장암은 암세포가 스스로를 보호하고 면역체계의 공격을 피하는 데 유리한 생존 환경이 조성된 상태에서 발생함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이 같은 분자생물학적 작용이 암 발병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점은 유전자 돌연변이가 주 원인인 그 밖의 대장암들과 초기 발생 경로부터 다름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최근 암 치료는 암종과 병기에 따라 일률적으로 치료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암세포의 유전적 특성과 발생 경로를 고려해 면역항암제를 적용하는 등 정밀·맞춤 치료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김 교수는 18일 “향후 여성에게 흔한 오른쪽 대장암에 대한 면역 치료 반응 예측이나 맞춤형 치료 전략을 세우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암 연구 & 치료’ 최신호에 발표됐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