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지 포천은 2007년 11월호 표지에 젊은 기업인 10여명의 단체사진을 실었다. 갱단 조직원처럼 바에 둘러앉아 포즈를 취했는데, 전자결제업체 페이팔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닷컴버블이 터져 침체된 실리콘밸리에서 페이팔을 성공시킨 이들은 저마다 새로운 창업에 나섰다. 스티브 챈의 유튜브,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리드 호프만의 링크드인 등 떠오르는 기업마다 페이팔 출신이 손댄 것에 주목한 포천은 이를 기사화하며 ‘페이팔 마피아’란 별명을 붙였다.
이들의 회사가 특이했던 점은 직원 채용 기준이라고 한다. 이미 거대기업이 된 구글이 박사학위 소지자를 찾을 때 페이팔 마피아는 박사과정 중퇴자를 뽑았다. 안주하지 않고 뛰쳐나온 사람, 모험을 망설이지 않는 인재를 원했다.
12년 뒤 2019년에는 블룸버그통신이 실리콘밸리의 새 트렌드라며 ‘우버 동창생’을 조명했다. 차량공유업체 우버에서 파생된 스타트업을 추려보니 다섯 공룡(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을 합한 것보다 많았는데, 배경에는 독특한 사업모델이 있었다. 세상에 없던 기술로 새 시장을 창출한 빅테크와 달리 우버는 이미 성숙한 교통시장에 뛰어들어 온갖 규제를 각개격파하며 성장했다. 비즈니스 백병전에 단련된 직원들이 다른 규제에 도전해 각자 기업을 일구면서 페이팔에 이은 창업 마피아가 형성됐다.
다시 6년이 흐른 지난주, 월스트리트저널이 ‘팔란티어 마피아’를 다뤘다. 페이팔 마피아였던 피터 틸의 데이터 분석업체로, 이 회사 출신이 이끄는 스타트업이 350개가 넘고 10여개는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이 됐다고 한다. 비결은 ‘전방 배치 엔지니어’란 전략이었다. 데이터 엔지니어를 고객사에 파견해 솔루션을 찾아주게 했더니, 거기서 노하우를 얻은 이들의 창업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창업 마피아의 주기적 등장이 실리콘밸리의 힘이지 싶다. 미국 경제의 혁신 성장은 쉼없는 도전의 산물이다. 한국 인재들이 의사 되려 줄서는 동안, 저들은 의사를 대신할 인공지능을 만들고 있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