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구치소에 수감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얼마 전 팔다리를 붙잡힌 채 특별검사 조사실로 끌려갈 뻔했다. 가까스로 위기를 넘긴 그의 무기는 오랫동안 체득한 법률 지식이었다. 검찰총장 출신인 윤 전 대통령은 구치소에 드러누운 속칭 ‘범털’을 억지로 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특검 조사를 거부하며 버티기에 돌입한 데는 지금보다 더 나빠질 게 없다는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형량이 사형 또는 무기징역인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을 받는 그였다.
특검은 윤 전 대통령 조사를 강행하고 싶겠으나 자칫 잘못하면 불법 수사 시비에 말릴 수 있다. 물리력을 동원해 윤 전 대통령을 조사실로 끌어내려 한 것은 문제가 있다. 전직 대통령이든 누구든, 죄의 경중이나 구속 여부에 상관없이 피의자는 조사를 거부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헌법에서 보장한 신체의 자유를 전제로 한 권리이며 허위 자백이나 고문을 막기 위한 장치다.
무리한 영장 집행을 비판하는 여론이 높아지지 않은 배경에는 윤 전 대통령의 적반하장식 태도가 있다. 위헌·위법한 계엄 사태로 나라를 뒤집어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 불법적 체포영장 집행을 이유로 교도관들에게 성내는 장면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것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고인에게는 인격권이나 신체의 자유까지 박탈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가 전직 대통령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내팽개치듯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인 게 충격적이다. 1차 체포영장 집행 당시 이른바 속옷 저항을 공개한 특검 측의 ‘공보’보다 윤 전 대통령의 추한 버티기가 입길에 더 오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윤 전 대통령은 구속 전까지만 해도 특검 조사에 응했다. 구속전 피의자심문에도 출석해 불구속 수사 필요성을 직접 강조했다. 구속영장 발부 이후의 조사 거부는 어떻게든 구속을 피하려는 플랜A에 실패한 뒤 묵묵부답의 플랜B로 급전환한 모습이었다. 구속 피하기에 실패한 상황에서 굳이 혐의 리스트만 늘릴 수 있는 특검 조사에 응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윤 전 대통령의 공소장에는 계엄 당시 “4명이 1명씩 들쳐 업고 나오라”면서 군 간부를 채근한 내용이 있다. 계엄 해제 의결을 하려고 국회 본회의장에 모인 국회의원을 강제로 끌어내라는 군통수권자의 지시였다. 헌법기구인 국회의원의 손발을 묶어두려 했던 그는 자신이 들쳐 업히는 위기를 맞아서는 스스로 내팽개쳤던 법의 보호망을 다시 둘러쓰려 한다. 이런 윤 전 대통령보다는 교도관을 더 걱정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완강하게 버티는 전직 대통령을 진땀 빼며 들어 옮기려던 교도관들이 되레 인권 침해를 당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김건희 여사는 구속 이후 특검의 첫 소환조사에 응했다. 남편과 다른 전략으로 보이지만 특검 측 신문에 대부분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점에선 유사하다. 조사를 받으면서 특검의 패를 가늠하고 이를 단서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죄의 무게를 덜어내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수사선상에 오른 선물 리스트를 최대한 줄이려는 전략이다. 김 여사는 특검 조사를 받던 중 쉬는 시간에 “다시 우리가(윤 전 대통령과 내가) 만날 수 있을까”라고 변호인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정 여론을 얻으려고 이런 말을 공개했는지는 모르겠다. 김 여사의 말이 근거 없는 것은 아니다. 법원은 1억원 이상 뇌물을 받은 피고인에게 최대 무기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김 여사 측 전략이 실패한다면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서로 면회도 못하는 형벌에 나란히 처해지는 첫 전직 대통령 부부로 기록된다.
김경택 사회부 차장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