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뷰티 인기 타고 K향수도 세계로…

입력 2025-08-18 02:34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한산한 평일 오후, 유독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 있었다. 블랙핑크 제니의 대형 사진이 벽면을 가득 채운 ‘탬버린즈’ 매장 앞이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20여명이 줄을 섰고, 인파가 차도로 밀려나자 택시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중국인 관광객 위에옌(25)씨는 “제니와 사진을 찍으러 왔다. 제니 향수로 굉장히 유명하다”고 말했다.

향수 열풍이 식지 않고 있다. 국내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며 글로벌 브랜드 공세가 커지는 한편, K뷰티 흐름에서 다소 비켜있던 K향수도 세계 무대로 발걸음을 넓히는 모습이다. 17일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지난달 향수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0% 신장해 올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신세계백화점도 상반기 향수 매출이 21.2% 늘었고, 신세계인터내셔날의 주요 향수 브랜드 1~7월 평균 매출 역시 전년 동기 대비 30% 증가했다.

이탈리아어로 ‘틈새’를 뜻하는 ‘니치’(niche)는 흔하지 않은 향을 가진 프리미엄 향수를 의미한다. 니치 향수는 마스크 착용으로 개성 표현이 제한적이었던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크게 성장했다. 흔하고 익숙한 향이 아닌 ‘나만의 향’을 찾기 위해 향수를 공병에 소분해 교환하는 문화도 우리나라에서 활발해졌다. 이같은 수요를 겨냥해 스웨덴 니치 향수 브랜드 ‘바이레도’는 지난 11일 소용량 ‘12㎖ 향수’를 세계 최초로 한국에 출시하기도 했다.

국내 향수 성장세가 지속되자 글로벌 브랜드들은 한국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바이레도는 지난해 신세계인터내셔날과 판권 계약을 종료하고 직진출에 나섰다. ‘일본판 탬버린즈’로 알려진 ‘시로’는 지난 4월 서울 성동구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프랑스 니치퍼퓸 하우스 ‘오르메’는 지난 5월 창립자 밥티스트가 내한해 프라이빗 시향회를 열며 한국 시장 공략을 본격화했다.

그러나 이 같은 열풍이 모든 브랜드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3대장’으로 불리는 ‘딥티크·조 말론·바이레도’에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아모레퍼시픽은 지난 6월 프랑스 향수 브랜드 ‘구딸’의 한국 사업을 종료했다. 로레알코리아 역시 2023년 니치향수 브랜드 ‘아틀리에 코롱’을 철수했다.

12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탬버린즈 매장 앞. 관광객들이 블랙핑크 제니와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서 있다.

이 틈새를 K향수가 파고 들었다. 성장을 이끄는 주역은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운 중소 규모 니치 브랜드다. 아이아이컴바인드의 탬버린즈와 2019년 시작된 ‘논픽션’은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고급스러운 향을 담은 핸드크림, 바디로션 등을 선보이며 소비자 접근성을 높였다. 국내에서 입지를 다진 후 해외로 무대를 넓히고 있다.

탬버린즈는 하나의 오브제같은 독창적인 디자인과 블랙핑크 제니를 모델로 한 마케팅으로 국내외에서 주목받았다. 2020년 348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646억원으로 4배 이상 성장했다. 일본 도쿄·중국 상하이에 이어 지난달엔 시부야에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논픽션은 세련된 향에 ‘외할머니 집에 온 듯 따뜻한’ 한국적 감성을 입혔다. 2020년 55억원 수준이던 매출은 지난해 479억원으로 커졌다. 홍콩과 도쿄에 시그니처 스토어를 잇따라 열었다.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K향수도 있다. 론칭 2년만에 300억원 매출을 달성한 ‘본투스탠드아웃’은 ‘찐 쌀’과 ‘매니큐어’ 등 실험적인 향으로 차별화에 성공했다. 국내 향수 브랜드 최초로 프랑스 파리 쁘렝땅백화점에 입점했고, 60개국 이상에 진출했다. 지난해 매출의 3분의 2 이상을 해외에서 거뒀다.

K향수에 대한 해외 수요도 확대되는 추세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향수 수출액은 3947만1000 달러(약 549억원)로 전년 대비 29.8% 늘었다. 한국무역통계진흥원 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동·오세아니아·중남미 지역 향수 수출액은 이미 지난해 연간 실적을 넘어섰다. 일본 큐텐에서도 지난 1~3월 K향수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K디퓨저·방향제 등은 10배 이상 급증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향수 시장은 브랜드 헤리티지가 중요한 만큼 신생 브랜드의 성공이 쉽지 않다”면서도 “K향수 브랜드의 해외 진출은 초기 단계인 만큼 K뷰티가 쌓아온 신뢰와 홈 프래그런스·바디케어 등 향 제품에 대한 전반적인 수요 확대와 맞물려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신주은 기자 ju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