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엽의 글로벌 기업 탐구] 도매·소매 경계 무너뜨린… 코스트코 ‘교란적 혁신’

입력 2025-08-19 00:32

판매가·용량은 도매… 장점 동시 추구
회원제 고객 기반 초저가 조달 갖춰
소수 직원 많은 직무… 직원 투자 우선
1.5억여명 회원·900여개 매장 구축

현재 세계 최대 소매유통 업체는 다양한 생활용품을 대용량 저마진으로 판매하는 코스트코다. 2025년 포춘 선정 존경받는 기업 리스트 6위에 오르며 월마트를 앞지른 코스트코는 미국에 600여개, 전 세계 14개국에 900여개의 매장을 구축하며 급성장했다. 1억5000만명에 육박하는 개인 회원을 보유한 코스트코의 경쟁력은 시장 구조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한 교란적 혁신이다.

프라이스·시네갈의 CEO 리더십
공동 창업자 짐 시네갈. 위키피디아

코스트코는 창립 시점이 모호하다. 1976년 창업한 프라이스클럽과 1983년 창업한 코스트코가 1993년 프라이스코스트코로 합병했고, 1997년 코스트코 홀세일로 사명을 변경했기 때문이다. 주역은 프라이스클럽 창업자 솔 프라이스와 코스트코 창업자 짐 시네갈이다. 코스트코의 뿌리는 시네갈이 자신의 멘토로 공언하고, 샘 월튼도 유통업계의 스승으로 극찬한 프라이스가 1954년 회원제 조합 형태로 창업한 혁신적 소매 업체 페드마트인데, 그때 경영 모델이 현재 코스트코에 대부분 남아 있다.

페드마트는 다양한 생활용품을 대량 구매해 창고형 매장에서 회원제 셀프서비스로 초저가 판매했다. 그는 할인이 아니라 원가에 최소의 마진만 붙여 공급하는 정직한 저마진 원칙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광고나 매장 장식 등 불필요한 비용을 제거했다. 장기 신뢰에 기반한 정직하고 공정한 회원 관계를 최우선시했고, 약간의 불만이라도 있으면 무조건 즉시 환불했다. 1975년 독일 자본이 페드마트를 인수하자 프라이스는 1976년 자기 모델을 더욱 체계화한 창고형 회원제 생활용품 업체 프라이스클럽을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에서 창업했다.

시네갈은 프라이스의 경영 모델에 감동받아 페드마트와 프라이스클럽에서 일하다 1983년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코스트코를 창업하고 1993년 프라이스클럽과 합병했다. 시네갈은 스승 프라이스의 경영 모델을 발전시켰고 합병된 회사의 창업 연도도 프라이스클럽이 창업된 1976년으로 선포했다. 시네갈은 코스트코의 미션을 ‘회원에게 최고의 상품을 최저의 가격으로 지속 제공하는 것’으로 선언하며 고객에게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타이어 등 다양한 생활용품 시장으로 적극 진출해 성장을 가속화했고 1995년 자체 브랜드 커크랜드를 도입해 수익성을 높였다.

2012년 크레이그 젤리넥이 CEO를 맡았고 지난해부터 론 바크리스가 코스트코를 이끌고 있는데, 이들은 페드마트와 프라이스클럽 때부터 함께 일했으므로 코스트코의 미션과 핵심 경영 모델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4개국에 진출했지만 해외 매장도 동일한 창고형 초저가 셀프서비스 모델이기 때문에 외관으로는 구분이 안 될 정도다.

독특한 상품 판매 모델로 급성장
코스트코는 대용량 용품을 도매가 수준의 저가로 중간소매상 없이 개인에게 직접 판매하는 전략으로 세계 최대 소매유통 업체가 됐다. 코스트코 홈페이지

코스트코 경쟁력의 핵심은 독특한 시장 전략이다. 코스트코는 소매 업체인지 도매 업체인지 모호하다. 사명인 코스트코 홀세일만 보면 도매 업체로 볼 수 있지만 직접 구매하는 고객이 개인 소비자라는 점에서는 분명 소매 업체다. 판매 상품 리스트를 봐도 상품별 브랜드 수가 적은 것 말고는 일반 소매 생활용품 업체와 다르지 않다. 특별한 것은 상품 판매 모델이다.

기존 소매 업체는 개인 소비자에 적합한 소용량 상품을 소매 마진을 붙여 판매하고 도매 업체는 소매 업체가 개인 소비자에게 판매할 상품을 대용량 패키지에 담아 저가로 판매했다. 그런데 코스트코는 대용량 패키지의 생활용품을 도매 공급액 수준의 저가로 중간 소매 업체 없이 개인 고객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이다. 원두커피의 경우 코스트코는 일반 커피점 원두 패키지 양의 3배에 달하는 대형 패키지를 2배 가격으로 판매해 고객이 3분의 2 가격에 구매하게 한다. 즉 직접 상대하는 고객이 개인이므로 소매 업체가 맞지만 상품의 용량과 가격은 도매 업체와 유사하므로 일종의 혼합형 모델인 것이다.

코스트코의 시장 전략은 도소매 시장 경계를 파괴한 교란적 혁신이다. 기존 유통업에서는 직접 소비자와 상품 용량, 가격을 기준으로 도매와 소매를 구분했으나 코스트코의 시장 전략은 소비자 기준에서는 소매이면서 판매가와 용량 기준에서는 도매다. 도매와 소매의 장점을 동시에 추구하는 교란적 혁신으로 급성장한 것이다.

전략 실행을 위한 조직 모델

그런데 이 전략이 성공하려면 납품 업체와의 가격 협상에서 초저가로 상품을 조달할 수 있는 대규모 구매가 필수적이다. 코스트코는 회원제로 확보한 대규모 고정 고객군을 기반으로 구매 협상에서 규모의 경제를 통한 초저가를 달성한다. 프라이스클럽과의 합병도 규모의 경제 관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전략이었다.

내부 조직도 초저가 경쟁력의 기반이다. 코스트코는 매장 판매 직원이 거의 없이 고객이 셀프로 상품을 카트에 담도록 하므로 직원 수가 유사 업체에 비해 훨씬 적다. 그러나 이 소수 직원은 구매조달, 판매, 교환, 회원 관리 등 다양한 직무를 수행해야 하므로 높은 역량이 필요하다. 따라서 시네갈은 주주보다 직원이 더 중요하다며 직원에 대한 투자를 최우선시한다.

시네갈은 직원 이직이 잦으면 경쟁력을 가질 수 없으므로 반드시 고용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유통업계 최고 대우를 제공한다. 예를 들면 미국 유통업계 직원 의료보험 제공 비율이 60% 내외인데 비해 코스트코는 90%를 훌쩍 넘는다. 반면 팀워크 기반 공동체적 성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경영진 연봉은 매우 낮게 책정한다. 시네갈은 CEO가 현장 직원보다 수백 배 연봉을 받는 관행은 한 마디로 잘못된 것이라고 단언한다. 2011년 퇴직 당시 그의 연봉은 미국 CEO 평균 연봉의 4분의 1도 안 되는 30만 달러 남짓에 불과했다.

전략적 옵션은 열려 있다

우리는 전략적 의사결정에서 기존 대안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에 몰두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가격 경쟁과 품질 경쟁 중 어느 쪽을 선택할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격 경쟁을 추구한 포드 등의 대량생산 전략과 품질 경쟁을 추구한 벤츠 등의 장인생산 전략으로 양분화된 자동차산업 구도에서 토요타는 품질·가격 경쟁력을 동시에 추구하는 유연생산 혁신으로 돌풍을 일으켰다. 또 전기차라는 존재하지 않던 카테고리 혁신을 시도한 테슬라마저 등장하며 기존의 2분법적 사고가 완전히 무너지고 있다.

유통업에서 도매업과 소매업의 경계를 무너뜨린 코스트코의 급성장은 당연시된 고정관념을 파괴한 전략적 혁신으로 이해돼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오랜 정체의 늪에 빠진 우리 기업 리더들도 기존 전략적 옵션 중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고정관념을 넘어 세계 어떤 기업도 시도한 적 없는 새로운 전략적 옵션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창조적 혁신을 고려할 때라고 생각된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