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놀이

입력 2025-08-18 00:33

대청소를 하다가 화분 하나를 오래 들여다봤다. 둥근 잎사귀 하나에 군데군데 상처가 생겼는데 어쩐지 웃고 있는 사람의 이목구비처럼 보였다. 자신에게 좀더 신경을 써 달라는 유머러스한 요청 정도로 느껴졌다. 대청소의 여정은 내게 포착되지 못한 숨은 즐거움을 더 많이 찾아내는 쪽으로 흘러갔다.

소파 뒤로 얇은 책 한 권이 넘어가 있는 걸 발견했다. 꺼낼 때 마구잡이로 어떤 페이지가 펼쳐졌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그 페이지에는 마당에 침범한 뱀을 갖고 노는 고양이를 집요하게 묘사하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뱀이 머리를 곧추세우고 달려들어도 계속 주먹을 날리는 고양이는 뱀이 죽을 때까지 뱀을 쫓아가며 다시 잡아와가며 때리고 때렸다. 이런 행위를 두고 사냥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놀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테지만 영락없는 영역 지키기 같았다. 무언가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아니고서는 감히 행해질 리 없는 집념이었달까. 어쩌면 이런 짐작조차도 너무나 인간답기만 한 추측일 것이다. 놀이이기 때문에 그만큼의 집중력이 행사될 수도 있는 법이니까.

나의 즐거움 찾아내기도 대청소라는 집안일이 놀이로 진화되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컴퓨터 자판에서 유독 ‘ㅇ’이 희미하게 지워져 있다는 걸 발견한다든가, 책상다리 아래로 숨어들어간, 벽지에 붙여둔 옛날 스티커 사진을 발견한다거나. 여행을 갔다가 다 쓰지 못하고 갖고 온 동전들을 모아둔 유리병을 열어본다거나. 선물받은 탁상용 스탠드의 전구가 밝기 조절이 가능하다는 걸 뒤늦게 발견한다거나. 자주 사용하지 않는 가방과 겨울 외투 주머니 속에서 등장하는 립밤들.

나는 할 일이 많을수록 청소를 하려 하고, 청소의 견적이 클수록 놀이처럼 하려고 한다. 청소가 놀이로 변질된 것이 아니라 진화된 것이라고 여기는 이유는 단 하나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은 발견들에 딸려온 이야기들과의 조우. 나는 이 이야기들로 며칠 동안 끝내지 못한 원고를 끝냈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