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과의 단절된 대화를 복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발신했다. 윤석열정부의 효력 정지와 북한의 파기 선언으로 사문화된 9·19 남북군사합의의 선제적 복원을 언급하며 북한의 호응이 없어도 먼저 손을 내밀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이 대통령은 특히 북한이 그동안 강력히 반발해온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겠다는 점도 천명했다. 새로운 대북 제안을 하지는 않았지만, 흡수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강조하는 등 북한의 우려를 불식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남북 관계를 ‘엉킨 실타래’로 표현하며 신뢰 회복과 대화 복원부터 시작해 인내심을 갖고 풀어내겠다고 밝혔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이 전날 담화에서 “한국은 자국 헌법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통일하려는 망상을 명문화해놓고”라고 언급하는 등 남측이 흡수통일을 추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는 점을 의식한 발언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이 ‘인내’라는 단어를 두 차례나 사용한 데서 보듯 당장 북한의 호응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지만, 화해 정책을 지속하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특히 문재인정부 때 체결한 9·19 남북 군사합의 복원을 언급했다. 9·19 군사합의는 2023년 말 북한의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대한 대응으로 윤석열정부가 일부 조항의 효력을 정지했고, 다음날 북한은 9·19 군사합의 파기를 공식 선언하면서 휴짓조각이 됐다.
이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과의 평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대북 확성기를 선제적으로 철거한 것처럼 앞으로 군사 분야에서도 선제적 유화 조처를 하겠다고 예고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통령은 특히 ‘단계적’이라는 단서를 함께 달았는데, 우리 측의 선제적 유화책에 북한이 호응한다면 다음 조치를 이어가겠다는 의미다.
구체적으로 남북 접경지 군사훈련 중단 등 추가 조치가 이어질 가능성이 거론된다. 9·19 군사합의에는 비행금지구역 설정, 공동경비구역(JSA) 비무장화, 군사분계선 일대 실사격 및 대규모 기동훈련 중단 등 적대행위를 금지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군 당국은 북한이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한 뒤 육·해상 완충 구역에서 포사격과 기동훈련을 진행해왔고, 이는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선제적 조치에 해병대 서북도서 해상사격훈련과 군사분계선(MDL) 5㎞ 이내 육군 사격 및 기동훈련 등 접경지 군사훈련 중단 혹은 축소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일본을 향해서도 화해와 상호협력을 원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이후 줄곧 일본과의 신뢰 회복을 강조해 왔는데, 이날 경축사에서도 일본을 ‘경제 발전에 있어 떼놓고 생각할 수 없는 중요한 동반자’라고 밝히는 등 강한 협력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에서 한동안 등장하지 않았던 과거사 문제가 이날 소환됐지만, 그 수위는 ‘과거사 문제로 고통받는 분들이 계신다’ ‘일본 정부가 과거의 아픈 역사를 직시하라’는 수준에 그쳤다. 오는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톤’을 조절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미래 협력 방안과 과거사에 대한 원칙적 입장 표명 등이 주요 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송태화 윤예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