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산 허위(1854~1908) 선생은 을미의병 당시 항일 의병을 소집하고, 을사늑약 이후 전국 각지 의병을 규합한 대표적인 의병장이다. 연천·적성·철원 일대에서 의병을 모아 항일투쟁을 했으며, 1907년에 이인영 선생의 의병부대와 함께 전국 의병 연합체인 13도 창의군을 결성해 서울진공작전을 준비했다. 이후 다시 전국적으로 의병 결집을 추진하던 중 은신처가 발각돼 1908년 6월 11일 일본군에 체포됐고, 그해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대에 올라 순국했다. 정부는 그 공로를 인정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계봉우(1880~1959) 선생은 북간도와 연해주 일대에서 민족교육과 항일운동을 펼친 대표적 지식인 독립운동가다. ‘의병전’ 등 항일 관련 글을 독립신문에 발표했으며, 1937년 소련 내 한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정책에 의해 카자흐스탄공화국 크즐오르다로 이주했다. 광복 후에도 북한의 귀국 요청을 거절하고 카자흐스탄에 남아 생을 마칠 때까지 22년 동안 모국어와 역사를 가르치면서 ‘조선문학사’ ‘조선문법’ ‘조선역사’ 등을 집필하며 한국어와 한국역사를 연구·보급하는 데 일생을 바쳤다. 정부는 선생의 공로를 인정해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바 있다.
이동화(1896~1934) 선생은 의열단원으로서 폭탄 제조기술을 익혀 항일 무장투쟁을 이끌었으며,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 제6대의 군사조 교관으로도 활동하다 1934년 순국했다. 이에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수원=강희청 기자 kangh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