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성과 만능주의 사회의 문화

입력 2025-08-15 00:34

한국 관객 반응 고민했다는
‘케데헌’ 감독… 성과에만
집착하는 우리 돌아보게 해

모든 게 짧고 빠르게 소비되는 게 당연한 시대, 몇 달째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작품이 있다. 바로 ‘케이팝 데몬 헌터스’다. 지난 6월 20일 공개됐는데도 좀처럼 열기가 식을 줄 모른다. 영화음악을 담은 OST는 미국과 영국 싱글 차트 정상을 동시에 거머쥐었고, 국내에서는 작품 공개 두 달 만에 감독이 직접 내한한 기자간담회가 열릴 예정이다. 스트리밍 플랫폼인 넷플릭스는 지금까지 극장 상영과 거리를 두던 오리지널 콘텐츠 관례를 깨고 특별 극장 개봉을 택했다. 모두 이례적인 일이고, 그만큼 큰 성공이라는 방증이다.

이게 마지막인가 싶을 때마다 전해지는 소식에 매일 놀라는 한편,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건 작품 공개 직후 이뤄진 인터뷰 내용이었다. 앨범 제작 비하인드를 통해 제작 소회를 나눈 감독 매기 강은 작품 공개 후 한국 관객이 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가장 많은 고민을 기울였다고 했다. 미국 자본으로 만들어진, 월드와이드 플랫폼에서 공개되는 작품의 고민 방향치고는 다소 소박하지 않나 싶었다. 몇 개국 스트리밍 1위라거나 기존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깨고 싶다 같은, 아무튼 뭐 그런 각종 출사표류에 앞서 그가 가장 노심초사한 건 작품의 주요 대상이 자신이 다룬 방식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지였다는 게 신선하고 반가웠다. 너무 오래 잊었던 감각이었다.

내가 나고 자란 나라가 성과사회라는 건 익히 알고 있다. 사람들의 눈과 귀가 온통 숫자를 향해 있으니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둔한 이라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커도 작아도 숫자라면 뭐든 환영이었다. 그 앞에 ‘최’가 붙으면 그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최초, 최연소, 최다, 최대. 누구보다 빠르고 남들과는 다르게 높고 멀리 간 사람들이 가져온 숫자는 언제나 다이아몬드처럼 빛났다. 어린 시절 어딜 가나 들었던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에 어떤 피와 땀이 맺혀 있는지, 길을 걷는 어른들 표정은 왜 하나같이 피로하고 짜증스러운지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알았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때문에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고 하던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숫자를 갖게 되고, 최초며 최다 업적을 몇백 개씩 쌓아도 사람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숫자를 보고 자라 그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여전히 숫자밖에 몰랐다. 지금 한국이 만드는 것 중 가장 유명하다는 케이팝의 경우를 보자. 검색창에 케이팝을 치고 국내 수십 인터넷 페이지를 넘겨 봐도 온통 숫자와 성과뿐이다. 어떤 곡이 1위를 했고, 이 그룹이 1위를 하면 어떤 공약을 선보일 것이고, 누가 어떤 시상식의 몇 번째 후보이며, 앨범이며 공연 티켓이 몇 장 팔렸다는, 온통 그런 이야기뿐이다.

성과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될 분야까지 그늘을 드리웠다. 최근 법적 논란까지 번진 경주 음악 페스티벌 ‘황금 카니발’을 둘러싼 사태만 봐도 그렇다. 독보적인 ‘능 뷰’를 자랑하며 시작한 지 3년 만에 개성 있는 국내 로컬 음악 페스티벌로 자리 잡은 축제는 2025년, 지난해까지 행사를 진행한 문화기획사와 경주시 사이의 첨예한 다툼으로 얼룩졌다. 기획사는 3년 동안 애써 키운 축제와 관련 저작권을 시가 일방적으로 탈취했다고 주장했고, 경주시는 허위사실 유포라며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고 대응했다. 서로의 입장이 있다고는 해도, 지금껏 갖은 성과를 핑계로 민간 창작물을 고민 없이 손쉽게 다뤄온 공공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상황을 곱게 보기 어렵게 한다.

끝없이 우상향하는 숫자 그래프를 만들려 각종 편법을 연구하는 어떤 케이팝 종사자들, 지원사업 목표를 연말 성과나 고과에 맞추는 어떤 공공기관과 어떤 담당자들, 빌보드 1위 곡이나 나와야 평론가 코멘트를 따기 위해 몇 년 만에 전화를 돌리는 어떤 언론인들을 생각하다 다시 매기 강 감독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우리가 그리고 당신이 굳이 문화를 만들고, 다루고, 소비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과사회의 중심에서 문화의 진짜 가치를 외친다. 비록 아무도 듣지 않는다 해도.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