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협상 때 노란봉투법 추진
코스피 5000 외치고 세금 인상
노조가 국익 생각할 거라 예단
동학개미 항의에 우왕좌왕
국익과 진영 양다리는 무리수
대의 위한 DJ·盧의 길 따라야
코스피 5000 외치고 세금 인상
노조가 국익 생각할 거라 예단
동학개미 항의에 우왕좌왕
국익과 진영 양다리는 무리수
대의 위한 DJ·盧의 길 따라야
천하람 의원(개혁신당):“국가 간 협상(한·미 관세 협상)에 따라 대기업들이 해외에 투자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노조가 거기에 대해 (노란봉투법을 근거로) 파업하면 기업은 샌드위치 되는 것 아닙니까. 대책은 있습니까.”
구윤철 경제부총리:“노조에서도 국익 관점에서 (파업 여부를) 판단할 거로 생각합니다.”
이달 초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 속 장면이다. 관세 협상에서 우리는 조선업 1500억 달러 등 총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다. 반면, 국회 통과를 눈앞에 둔 노란봉투법은 근로조건이 악화될 경우 해외 투자도 쟁의행위 대상이 되도록 했다. 국가 간 약속과 법이 충돌하는 국면의 해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한국 경제 수장이 이렇게 답변했다. 실소를 금치 못했다.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거대 노조)이 국익을 위해 파업을 자제할 것이란 소리는 살다살다 처음 들어본다. 노조가 나라 사랑하는 마음에 노란봉투법이 시행돼도 해외투자에 따른 생산라인 이전·축소를 받아들일 거란 얘긴가. 이런 순진한 생각을 경제부총리가 버젓이 밝힌 게 우선 놀랍다(이 말을 두 번이나 했다). 입법 과정에서 누구보다 민생·국가 경제의 이익, 영향을 따져야 할 당사자가 노조의 ‘선의’를 내세운 것도 어이 없다.
관세 협상을 위해선 노란봉투법을 유보(혹은 철회)하든가 해외투자 관련 부분을 예외로 하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이달 내 예외 없는 노란봉투법 통과를 다짐했다. 부총리의 발언은 국익(관세 협상)과 진영 이익(노란봉투법)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정책 엇박자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재명 대통령은 “코스피 5000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주식투자를 부동산 버금가는 대체 수단으로 만들겠다”고도 했다. 주주 가치를 높일 ‘상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정부 조치에 화답하듯 코스피가 올 들어 7월까지 35.26% 올라 세계 주요 지수 중 1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7월 말 세제개편안 발표가 찬물을 끼얹었다.
세제개편안 골격은 증세다. 핵심이 대주주 주식 양도소득세 강화, 증권거래세 인상,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이다. 하나같이 증시에 악재가 될 것들이다. 양도세 기준이 강화(50억원→10억원)되면 대주주는 세 부담으로 연말에 주식을 집중 매도, 개미들이 피해를 본다. 증권거래세 인상은 주식 거래를 둔화시킨다. 법인세율이 오르면 주가를 이끌 기업 이익과 투자가 줄어든다. “코스피 5000 가즈아!” 해놓곤 후진 기어를 넣었다.
더불어민주당은 뒤늦게 양도세 기준 50억 유지를 정부에 요청하며 부산을 떤다. 대통령실은 “당정 조율을 지켜보겠다”며 간보는 중이다. 번복 여부를 떠나 당정 협의를 거쳐 세제개편안을 만들 때 이런 파장 하나 예상 못했다는 점이 더 한심하다. 정상적인 당정이라면 상법 개정안과 대주주 양도세 기준 강화 방안을 동시에 내놓진 않는다.
어느 정부고 정책 엇박자가 없진 않았다. 경제나 환경, 산업과 금융 등 부처 간 이해관계가 달라서 나타난 게 대부분이었다. 현 정부 모습은 결이 다르다. 이견을 조율 못해서가 아닌 이견을 모두 충족시키겠다고 큰소리 치다 엉뚱한 결과를 낳고 있다. 기업·금융·대주주 정책이 대표적이다. 경제 및 자본시장 성장을 담당하는 이들을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과 이들을 적극 규제해 과도한 이익을 억제해야 한다는 진보 진영의 시각을 동시에 녹이려 한다.
그러니 “경제를 살리는 주역은 기업”이라 띄우고선 노란봉투법 같은 반기업 법안을 천연덕스럽게 내미는 일이 벌어진다. “국장으로 오세요”라고 개미에게 손짓한 뒤 “세금 더 걷겠다”는 고지서 전달을 당연시한다. 금융권에 배당 늘리라 압박하면서 상생금융 출연금, 교육세 부담 등을 떠맡기는 기업 가치 훼손에 스스럼없다.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고 상충되는 정책이 반복되면 여권의 이중성을 고백하는 거나 진배없다. 이는 국정의 혼선과 불신을 초래해 정책 동력을 떨어뜨린다. 국가 경영자로서 이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 진영의 청구서가 신경 쓰이는가. 김대중 대통령은 외환위기 당시 노동 개혁에, 노무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나섰다. 우군인 노동자·농민의 반대를 극복하고 이들을 설득해 이룬 결과다. 후세를 위한 결단으로 지금도 칭송받는다. 진보 진영 선배 지도자들의 모범 답안을 참고하면 된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