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고정희 (20) 주거 문제로 고민… “포기하지 마세요” 딸 말에 정신 번쩍

입력 2025-08-15 03:04
한국에서 온 선교팀 학생들이 2017년 일본 오사카 조선학교의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지켜보는 가운데 워십을 하고 있다. 고정희 선교사 제공

오사카에 와서 우리의 발이 되어줄 자동차가 없었다. 남편은 대신 “많이 걸어 다녀야 한다”며 가격대가 높은 운동화를 사줬다. 며칠 후 꿈을 꿨는데 새 운동화 바닥에 구멍이 나 있었다. ‘비싸게 주고 산 건데…’라며 속상했는데 꿈이었다.

얼마 후 오사카로 오게 해주신 목사님이 찾아오셨다. 우리 부부는 그 목사님 교회의 협력 선교사로 되어 있어서 비자 발급이 가능했다. 그런데 목사님은 조선학교 사역보단 닫혀 있던 한인교회의 회복을 바라셨다. 재일조선인을 품기 원하는 우리의 사역 방향과 달랐다. 목사님은 “(사역 방향이 다르니) 나중을 생각해 좋게 마무리해야 할 것 같다”며 사택을 비워달라고 요청하셨다.

당시로선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지만 하나님이 길을 만들어가시는 일임을 알고 있었다. 사택을 비우고 다시 이사하려면 협력교회가 있어야 했다. 한국에 중보기도를 요청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2014년 도요타에서 처음 조선학교로 인도해준 목사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오사카 외곽 하비키노에 메구미나 일본교회가 있는데 거기에 사정을 이야기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2016년 5월 메구미나 교회는 먼저 우리 부부가 교회를 다니면서 좀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고 했다. 사방이 꽉 막힌 상황에서 우리는 잠시 한국으로 나왔다. 한국에서 몇 개월을 지냈지만 마음이 안정되지 않았다. 어느 날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집에 온 딸아이가 말했다.

“나는 엄마 아빠가 일본으로 다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엄마 아빠를 위해 참았어요. 그런데 여기서 포기하면 나의 학창 시절이 억울해요.”

딸의 말을 듣는 순간 하나님의 명령 같았다. 우리 부부는 텐트를 치고 살아도 일본 땅으로 돌아가겠다고 결단했다. 그즈음 우리 소식을 알고 있던 순회선교단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전에 있는 학원 학생들이 오사카로 아웃리치를 가고 싶어 하는데 만나볼 수 있는지 물었다. 복음으로 충분하다고 고백하는 아이들과 함께 오사카를 방문했다. 그리고 처음 철문을 열었던 타츠미에 있는 조선학교로 갔다.

선생님들이 우리 부부와 한국 학생들을 반갑게 맞아주셨다. 학생들은 “조선학교 아이들에게 찬양과 워십을 보여주고 싶다”며 한국에서부터 악기를 메고 들고 갔다. 교장 선생님께서 “조선학교 아이들도 한국 친구들이 노래하는 거 무척 좋아할 것”이라며 운동장에서 공연하도록 허락하셨다. 전교생이 창문을 열고 기쁘게 찬양을 따라 불렀다.

주일에 한국에서 온 선교팀과 함께 메구미나 교회로 갔다. 한 일본 성도가 “교회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할머니가 사시던 집이 있는데 지금은 돌아가셔서 비어있다. 오래된 집이지만 괜찮다면 사용하셔도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주거 문제가 해결됐다. 교회는 비자 문제도 함께 하자고 하셨다. 하나님은 그렇게 메구미나 교회에 우리 부부를 심으셨다. 2017년이 되며 우리 부부는 다시 오사카로 왔다.

정리=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