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 나는 가끔 연필을 깎는다. 마음을 가다듬는 작은 의식 같은 것이다. 데이비스 리스의 ‘연필 깎기의 정석’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별것 아닌 일을 고집스레, 느리게, 어렵게 하는 태도. 어쩌면 장인이란 그렇게 한 가지 일을 오래도록, 그러나 절대 포기하지 않고 이어온 사람일지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사람인지도. 나도 ‘잘할 수 있는 일’ 목록에 언젠가 ‘연필을 잘 깎는 사람’이라는 문장을 적어두고 싶다.
연필이 엄지만큼 짧아지면 수명이 다해가는 듯해 조금 서운해진다. 그래도 끝까지 다 쓰는 편이다.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물건을 아껴 써라”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으며 자란 탓인지, 무엇이든 끝까지 다 써야 비로소 새것을 들인다. 그 습관은 오래전 기억에서 비롯된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을 하루 앞둔 날 아버지가 연필을 깎아 주셨다. 아버지는 날이 짧고 자루가 한 뼘 남짓한 낫을 썼는데, 풀이나 잔가지를 치기에 알맞은 작은 낫이었다. 회색 숫돌 위로 물을 찰박 끼얹으며 낫을 가는 모습은 어린 내 눈에 묵묵하고 멋져 보였다. 아버지가 연필 깎는 법은 조금 달랐다. 왼손에 낫을 고정하듯 단단히 쥐고, 오른손 엄지로 연필을 살살 밀며 돌렸다. 무 껍질이 벗겨지듯 흰 나뭇결이 드러났다. 잘 깎였는지 눈으로 재본 뒤 너무 뾰족하지 않게 연필심을 다듬었다. 필통에 키 순서대로 잘 깎인 연필을 채울 때마다 든든했다.
글을 쓰다 지칠 때면 나는 그때의 기억을 꺼내본다. 아버지의 방식으로 딸의 학창 시절을 응원해 준 다정한 마음을. 어쩌면 한 사람의 삶을 말해주는 것은 문장이나 말이 아니라 그가 즐겨 쓰던 연필 한 자루일지도 모른다. 그런 물건이야말로 한 사람의 태도와 시간을 조용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는 연필 끝에 남은 흑심 가루를 가볍게 불어 털어낸다. 그리고 새 노트를 펼친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